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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이<災異>의 천견<天譴>
2020년 06월 05일 (금) 11:14:29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왕조시대의 경우 하늘은 보이지 않으나 군주의 정치를 감시하고 있었다.
군주가 정치를 올바로 할 자격이 있는가. 올바로 하려 하는가. 올바로 하고 있는가. 등에 대해 끊임없이 점검하는 것으로 보았다.
 
일식, 월식, 성변, 일변, 혜성, 출연 등의 천문 변화와 함께 이상기온, 이상기후, 짐승의 움직임과 변화, 돌과 나무의 움직임과 지진, 물색의 변화, 땅 꺼짐 현상 등이 그 징조들, 즉 서징<庶徵>이었다.
 
그들은 결국 군주에게 하늘이 내리는 경고에 해당하였다.
이러한 재이에 대한 설명을 보면 일상적이 아닌 것, 즉 변<變>은 이<異>이고 그 중 작은 것은 재<災>라 하였다.
재<災>가 먼저 오고 이<異>가 뒤따르는데 재는 하늘의 꾸짖음, 이는 하늘의 위엄이라 했다.
 
따라서 하늘이 내리는 재이는 국가의 실정을 뜻하며 이에 대한 반성과 개선, 개혁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의 자격이 없는 경우를 보자 왕조시대에 있어 군주의 자격을 가늠하는 첫 번째 조건은 혈통이다.
적통을 계승하고 있는가. 적통은 아니나 왕자로써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등이 고려되어야 했다.
그러나 국왕의 핏줄이 아닌 경우 문제가 된다.
그 예가 고려의 우왕과 창왕이었다.
신돈의 핏줄로 전제되면서 고려사에서는 이들을 신우, 신창이라 불러 구분했다.
 
예컨대 자격이 없음에 대해 하늘은 우왕의 즉위 대 다음과 같은 재이를 보여주었다.
즉 그의 즉위가 1375년 10월에 있었는데 이날에 이틀간 짙은 안개가 끼고 천둥, 우박이 떨어지고 공민왕 국장 때는 무지개가 해<日>를 둘러싸고 해 곁에 또 작은 해가 2개 떠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11월 태묘에서의 제삿날 큰 비가 내리고 우레와 번개, 큰 지진<地震>이 일어나고 올빼미가 태실에서 울었다.
공교롭게도 우왕 재위 년인 1375~1388년 사이 가뭄과 우박 등 천재지변의 년간 발생률은 고려왕조에서 가장 높았다.
사실 재이는 어떤 군주가 재위하고 있는가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자연현상이었다.
문제는 재이의 발생 때 군주가 어떠한 정치적 노력을 기하려 추진 했는가였다.
 
예컨대 식량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업은 기후 변동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한반도는 봄 가뭄이 심판 현에 속한다.
파종과 함께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필요한 수분이 부족하면 결국 실농하게 되고 이어 기근과 전염병 등이 창궐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가뭄이라는 재이에 대한 대책은 국왕 정치의 성공여부를 가늠하게 된다.
임금의 자리는 하늘이 주는 것이라고 전해 오는 말이 있다.
918년 6월에 왕건은 신숭겸, 복지겸, 배현경 등은 궁예 축출에 대해 혼군<昏君>을 펴하고 명군<明君>을 세우는 것은 천하 대의라고 하였다.
이들에 의해 추대된 태조 왕건은 “궁예의 정치는 혹독하고 포악하게 사람들을 억압하였다.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국토는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토목공사에 시달리고 농사철을 빼앗겼다.
 
기근이 거듭 들고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가정을 버리고 길에서 굶어 죽는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고 곡식 값은 폭등하였다.
백성들은 자기 몸과 처자를 팔아 남의 집 노비가 되기도 했다“라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은 햇수로 4년의 재위했다.
재위동안 우박과 비 피해 성변<星變> 등의 피해가 잇따랐다.
이러한 공양왕에 대하여 “1392년 7월 병신일 지금 왕이 혼암<昏暗>하여 임금의 도리를 이미 잃고 인심도 이미 떠나갔으므로 사직<社稷>과 백성의 주재자<主宰者>가 될 수 없으니 폐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한 대목이 나온다.
 
이는 조선 태조에 대한 추대와 등극 과정을 보여준다.
태조 이성계는 “이 추대에 대해 예로부터 제왕의 일어남은 천명<天命>이 있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나는 실로 덕이 부족한 사람인데 어찌 감히 이를 감당하겠는가”라고 세 번 사양하였다.
그리고 즉위 이튿날에는 아주 짤막하지만 명료한 기록이 나온다.
“비가 내렸다. 이보다 앞서 오랫동안 가물었는데 임금이 왕위에 오르자 억수같이 비가 내리니 백성이 크게 기뻐하였다”라고 하였다.
천명에 따른 제왕의 직위임을 간명한 사료로써 대신해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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