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미래신문
최종편집 : 2020.5.28 22:07
뉴스 피플 기획ㆍ특집 사설ㆍ칼럼 포토 학생ㆍ시민(주부)기자 독자마당
> 뉴스 > 오피니언 > 기고 | 미래춘추
     
불행을 초래한 역사의 대립과 갈등
2020년 05월 22일 (금) 11:20:00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좋지 않은 역사가 있다.
처음에는 선의의 경쟁을 하다가 차츰 차츰 경쟁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상대를 이기는데 골몰하고 이론을 떠나 물리적 공격을 하고 그것이 격화되면서 상대를 무시하고 배제하다가 아예 살육전을 벌여 상대의 대<代>를 끊어버리는 잔인함을 드러낸다.

그것도 모자라 차라리 나라를 외국에게 넘기더라도 상대와는 죽어도 화해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지독함의 역사가 있다.
임진왜란도 병자호란도 경술국치도 6.25도 그렇게 해서 일어났다.

만약 동인<東人>이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의 십만양병설을 받아들였다면 만약 김성일<金誠一>(1538~1593)이 황윤길<黃允吉>(1536~?)과 같이 일본의 침략 의도를 사실대로 말했다면 임진왜란은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났더라도 일치단결하여 전 국토가 초토화 되고 수많은 백성이 혹독하게 유린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임금이 의주까지 피란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 노론이 광해군을 폐위하는 쿠데타가 없었다면 청나라 실체를 바로알고 적절한 외교적 처신을 하였더라면 병자호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삼전도<三田渡>의 굴욕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리한 북벌 계획을 권력사수의 수단으로 삼지 말고 민생을 위해서 지혜와 힘을 모았더라면 조선후기 혹독한 부정부패 가렴주구를 바로 잡았을 것이다.

구한말 외세에 기대어 자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고 조금씩 양보하여 조화를 이루었다면 일국의 왕비가 일본의 한낱 낭인<浪人>들 손에 무참하게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며, 조선이 열강의 전쟁터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합심하여 외세에 맞섰다면 망국의 치욕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정치의 중심에 있는 양<兩> 김씨가 80년대에 서로 끝까지 협력했더라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하였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불행의 이면에는 모두 앞에 말한 오불<五不>이 있다.
우리시대의 오불<五不>은 당연히 우리 스스로가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는 이런 잘못을 바로 잡을 가치기준과 이를 사회적으로 실현해 나갈 중심인물이 많이 부족하다.

곧 사회적 공론을 주도할 사람이 없다.
우리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너무 이념의 한 끝에 서 있는 상황을 많이 본다.

아예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높으신 분들을 많이 본다.
특히 고비마다 이러한 광태<狂態>를 준엄하게 꾸짖고 바로 잡아 주는 사회적 공론<公論>을 주도하는 시민정신이 살아 있다면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두 사람의 선각자를 떠올려 본다.
한 사람은 조선시대 사람의 표상이 된 남명<南冥>이며, 또 다른 한 사람은 대동사회를 꿈꿨던 퇴계이다.
남명은 인<仁>을 자기철학의 대표개념으로 제시하였다.

이 인은 유학의 대표개념으로 이 인의 의미는 다양하게 설명되지만 현대적 감각으로 정리하면 인은 인간의 본질이며, 최고의 도덕적 원리이자, 모든 가치의 근원이며, 존재론적 도덕적 생명의 은원이며, 천일합일의 원리이며, 실천의 덕목이라고 말하였다.

큰도가 행하여진 세상에는 천하가 공변<公辨>되며 어진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을 관직에 가려 뽑고 믿음을 강조하고 화목을 도모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만을 부모로 섬기지 않고 자신의 자식만을 자식으로 돌보지 않았으며, 노인은 생애를 편안하게 마칠 수 있게 하고 장정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어린이는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과부, 고아, 병든 사람은 모두 돌보아 주도록 하였으며, 성인의 남자는 직분이 있게 하고 여자는 시집을 갈 수 있도록 하였으며, 재화는 땅에 버려져 있어도 그것을 줍는 것을 싫어하였으며, 개인에게만 반드시 축적되도록 하지는 않았으며, 힘이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음을 싫어하고 힘이 개인을 위해서만 쓰이지 않도록 하였다.

이런 까닭에 모략이 단절되어 일어나지 않았으며, 강도, 도둑, 반란, 역적이 생기기 않았기 때문에 바깥문을 잠그지 않았다.
이것이 남명 퇴계가 대동이라고 하였다.

고성미래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고성미래신문(http://www.gof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 127-4(3층)  |  대표전화 : 055)672-3811~3  |  팩스 : 055)672-3814  |  사업자번호 612-81-25521
등록번호 : 경남 아 00137(인터넷신문)  |  등록일 : 2011년 4월 7일  |  발행년월일:2011년 4월 20일  |  발행인ㆍ편집인 : 류정열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준현
기사 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 및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2011 고성미래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of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