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미래신문
최종편집 : 2020.7.10 13:21
뉴스 피플 기획ㆍ특집 사설ㆍ칼럼 포토 학생ㆍ시민(주부)기자 독자마당
> 뉴스 > 오피니언 | 미래춘추
     
조선시대 서당풍경 ③
2020년 04월 17일 (금) 11:35:06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조선조 말기 유학자인 곽종석<郭鍾錫>(1846~1919)과 같은 학자 허유<許愈>(1833~1904)는 같은 학자로서 당시 경상우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그 명성이 높은 학자였다.

이 두 분의 대학자께서 인지재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 동시에 참석했다는 것은 그 강회의 비중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인지재는 많은 장서를 갖춘 문중 도서관으로써 평소에는 집안 자제들을 교육하는 서당으로 사용되었다가 강회<講會>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접빈<接賓>의 장소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물천<勿川> 김진호<金鎭祜>께서 세운 물천서당<勿川書堂>이나 용문정사<龍門精舍>는 지역 육학교육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기능은 일제 강점기에서도 여전히 계속되었다.

김진호는 용문정사강규<龍門精舍講規>를 정하였다.

무릇 독서는 모름지기 완전히 외우고 정밀하게 생각해야 학문에 유익하다. 

또한 매일의 과업 분량은 하나의 단위를 넘지 않아야 심지<心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으니 옛 사람이 과정을 엄격하게 선정한 것이 이 때문이다.

이 강규를 통하여 볼 때 용문정사의 교육은 전통유학의 입장에서 엄격한 과정 속에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살핀 조선후기 문중서당의 모습은 동시대의 다른 서당과는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정통 성리학적 이념과 방법으로 운영된 서당은 개화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더욱 많이 설립되었다.
김홍도의 풍속화된 서당은 서당의 풍경을 보여주는 잘 알려져 있는 유명한 서당이다.

여기서 학동들 모두 책 1권 씩 앞에 놓고 선생의 가르침에 소홀이 하게 되면 회초리로 맞게 된다.

요즘 같으면 이것은 교사의 체벌로 문제가 되겠지만 당시에는 별 문제가 없었고 부모들도 이를 훈육의 정당한 방법이라 용인했다.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기를 거치면서 학교에서의 체벌을 도를 넘어서 폭력에 가까웠다.

영어발음이 좋지 않다고 뺨을 맞기도 하고 원소 주기율표를 외우지 못했다고 엉덩이가 터지도록 매 찜질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교사의 폭력성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식이 교사에게 체벌을 받았다고 학교로 찾아가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형사고소 하는 것도 역시 정당화 될 수 없다.

서당에서 사용하는 회초리는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벌 받을 당사자가 해 오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회초리는 사랑의 매가 될 수 있을 것이고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교육적인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김홍도가 그린 서당의 그림의 매는 매우 가늘게 보인다.

서당에서의 글 읽기에 대한 평가를 강<講>이라 하는데 매일 실시된다.

전날 배운 내용을 돌아 앉아 암송<暗誦>하는데 이것에 합격 해야만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불합격하면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꼬 배운 내용을 다시 공부해야 했다.

학습할 내용은 개인의 능력에 맞게 배당되었고 그 내용을 완전히 익혀야만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었다.
익히는 방법은 스스로 반복하는 것이었다.

오늘 날로 보면 개별 학습, 능렬 학습, 자율 학습이 서당교육의 특징이다.
서당에 따라 10일, 15일, 한달 등 날짜를 정해 놓고 강<講>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때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네 단계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통<不通>」의 다섯 단계로 구분하여 등급을 판정하였는데 조<粗> 이상을 함으로 하였다.
가장 우수한 자는 상을 주고 불<不>의 평가를 받은 자는 불합격으로 하여 합격 할 때까지 반복해서 공부하도록 했다.

한권의 책이 끝나면 그것을 걸어두는 축하식인 책걸이를 행하였다.
이를 괘책례<掛冊禮> 또는 책세식<冊貰式>이라 했는데 서당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암송하거나 훈장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책을 모두 읽었음을 인정하는 행사였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잔치를 열어 훈장의 노고를 위로하고 전 학동이 회식하는 자리였다.
이런 풍경은 너무나 정겹다.
글을 읽는 것과 더불어 쓰는 것을 동시에 하는 것은 문자 학습에 매우 유용하다.

서당에서는 이런 작업이 동시에 일어났다.
초보자에게는 대체로 훈장이 먼저 글자를 읽어 준 후에 따라 읽게 하고, 서판<書板>이나 종이 위에 모범

글씨를 쓴 후에 그 글씨를 따라 반복해서 쓰게 하는 방식이었다.
제술<製述>은 훈장의 능력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은 곳도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몇 장면의 서당 풍경은 단순히 지나간 장면이 아니다.
지금 우리 눈 앞에서 전개되는 학교 풍경은 옛 서당 풍경의 재연이다.
이 풍경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새로운 풍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고성미래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고성미래신문(http://www.gof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 127-4(3층)  |  대표전화 : 055)672-3811~3  |  팩스 : 055)672-3814  |  사업자번호 612-81-25521
등록번호 : 경남 아 00137(인터넷신문)  |  등록일 : 2011년 4월 7일  |  발행년월일:2011년 4월 20일  |  발행인ㆍ편집인 : 류정열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준현
기사 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 및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2011 고성미래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of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