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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당 풍경
2020년 04월 03일 (금) 11:30:58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공교육의 위기니, 교실 붕괴니, 학교 폭력이니, 교사의 처벌이니, 시험스트레스니, 성적비관 자살 등의 학교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기사이다.


이러한 기사가 등장할 때마다 자주 받는 질문 중에는 ‘옛날 학교는 오늘날과 어떻게 다른가?’, ‘옛날 학생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훈장은 어떤 사람일까?’, ‘오늘처럼 시험은 보았는가?’ 등이다.

대부분의 조선시대에 초등교육기관인 서당<書堂>, 중등교육기관인 사학<私學>과 향교<鄕校>와 서원<書院>, 고등학교기관인 성균관<成均館> 등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교육기관들 교육의 수준에 의해 제도적으로 명확히 구분된 것이 아니었다.

연속성을 갖춘 단계적 교육기관이 아니라 각자 완성된 형태의 독립적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과는 달리 성균관 입학은 반드시 향교, 서원, 사학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다.

유교국가인 조선에 있어서 향교, 성균관, 서원은 유학적 교양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적 기능 이외에 유교적 이념에 입각한 각종 종교적 의례를 행하는 종교적 기능을 동시에 행사하는 기관이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이들 기관은 교육적 기능은 점점 약화되고 종교적 기능인 제사<祭祀>는 점점 강화되었다.

사실 성균관마저도 교육의 기능은 활성화되지 못하여 거관<居館>을 기피하는 풍조가 만연되었고 과거<科擧>에 응시하기 위해 적<籍>을 두어야 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교육기능을 지속적으로 발휘한 기간이 서당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서당은 반드시 아동<兒童>을 대상으로 한 교육기관이 아니고 교육수준도 초보적인 수준의 문자 교육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코흘리개 어린애부터 마흔 전 후인 성인을 아우르는 폭넓은 범위의 교육대상을 가진 서당도 있었고 누가 설립했느냐에 따라 서당이 위치한 마을에 따라 초급의 문자교육에서 과거<科擧>교육, 심지어 심오한 문학과 철학의 강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교육이 이루어진 곳도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서울대학 총장인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한 퇴계 이황이 설립한 당대 최고의 사설 아카데미인 도산서당도 그 서당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국공립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성균관 향교와 사립교육기관인 서원을 제외한 다양한 성격의 교육기관 모두가 일반적으로 서당<書堂>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서당은 또한 글방, 사숙<私塾>, 서재<書齋>, 정사<精舍>, 서숙<書塾>, 학당, 강당, 가숙<家塾>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는 김구 선생이 다닌 서당에 관한 몇 가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 기록은 조선후기 서당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어린 시절 김구 선생은 상놈이라는 이유로 천대를 받았다.

이러한 천대에서 벗어나는 길은 글공부를 잘하여 큰 선비가 되어 과거에 급제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듣게 된다.

‘이 말을 들은 뒤로 나는 부쩍 공부할 마음이 생겨서 아버지께 글방에 보내어 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도 주저하지 아니할 수 없으셨다. 우리 동네에는 서당이 없으니 이웃 동네 양반네 서당에 갈 길 밖에 없다. 그런데 양반네 서당에서 나를 받아줄지 말지도 알 수 없는 일이거니와 또 거기 들어간다 하더라도 양반 자식들의 등쌀에 견디어 낼 것 같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얼른 결단을 못하다가 마침내 우리 동네 아이들과 이웃 동네 상놈의 아이들을 모아서 새로 서당을 하나 만들고 청수리 이생원이라는 양반 한 분을 선생으로 모셔 오기로 하였다. 이생원은 지체는 양반이지만 글이 넉넉지 못하여 양반서당에서는 데려가는 데가 없기 때문에 우리 서당으로 오신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조선 후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서당이 존재하고 있었다.

전순우 교수는 서당을 분류하기를 학습수준별로 초학 아동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동몽서당, 사서수준의 경학을 가르치고 과거 준비까지 아우르는 경학교육, 그리고 뛰어난 명유석학들이 직접 가르치던 도학형, 서당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설립지역에 따라 도시형 서당과 촌락형 서당, 주요 집단에 따라 사족연합서당, 문중서당, 유지독서당, 관주도서당, 신분에 따라 양반 중인 평민들이 다니는 서당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분류에 따르면 김구 선생이 처음 다닌 서당은 어떤 성격의 서당인지 알 수 있다.
여기서 훈장으로 초빙한 이생원을 통해 서당훈장에 관한 여러 사실을 알 수 있다.
인생원은 조선후기 여러 서당을 전전하는 몰락한 양반이다.
그는 글이 짧아 양반 서당에는 초빙되지 못하고 상놈 서당의 선생이 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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