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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시대 예비왕비의 공간
2020년 03월 13일 (금) 13:17:58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왕비(또는 왕세자빈)를 선발 하기 앞서 먼저 금혼령<禁婚令>을 내렸다.
금혼 대상은 보통 15~20세의 처자들이었다.
이 금혼기간 동안 결혼 적령기의 처녀가 있는 사대부 집안에서는 왕실에 처녀단자를 제출해야 했다.
수합된 처녀단자를 근거로 세 차례의 간택을 통해 왕비를 선발하였는데 이때 최종 간택된 처자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별도로 왕실에서 마련한 별궁<別宮>으로 가야했다.

선발된 처자는 삼간택이 끝난 뒤부터 가례<嘉禮>날까지 약 50일을 별궁에서 머물렀다.
별궁에는 여러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병풍과 장막을 비롯하여 화장에 쓰는 물건인 자장<資粧> 등이다.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閑中錄>에 따르면 특히 시어머니가 별궁에 물건들을 세심하게 챙겨주었음을 엿볼 수 있다.
사도세자의 생모였던 선희궁<宣禧宮>은 혜경궁 홍씨에게 일본에서 들어온 진주로 만든 큰 가지 모양의 노리개를 내려주고 수놓은 병풍 네첩을 구하여 침방에 치라고 보내주었다.
며느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왕실 어른들의 큰 관심 속에 있었지만 예비 왕비는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다.
이에 대한 왕실의 배려였는지 처자의 가족은 별궁을 드나들며 그녀를 만나볼 수 있었다.

왕실 어른들은 상궁을 자주 별궁에 보내 예비 왕비의 안부를 물었는데 이때 상궁에게 처자의 친정집 부모도 만나 정성껏 대우하도록 했다.
혜경궁은 친정집에 대한 왕실의 각별한 지원에 대해 상궁이 오면 잔상<盞床>과 예관<禮官>이 따라 들어왔는데 상차림이 넉넉하고 후하여 이후 두고두고 가례 때 훌륭했던 일을 말하곤 했다.라고 회고했다.
별궁에서 처자 가족들 간의 왕래는 가능하였으나 처자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는 것만은 허락되지 않았다.

‘한중록’에는 이러한 상황이 잘 기록되어 있는데 “나는 어머니 곁을 떠나 잠잘 일을 걱정하였다. 나도 밤중에 잠을 못자고 슬퍼하였는데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겠는가” 등이 있다.
보모인 최상궁은 성품이 엄하여 사사로운 정이 없었다.
최상궁은 “나라법이 그렇지 아니하니 내려가소서”하고 어머니와 같이 자지 못하게 했다.
쌀쌀맞고 인정이 없었다.
엄마 품을 떠나야 하는 처자의 서글픔이

예비왕비는 별궁에서 왕실의 법도를 익히고 왕비로서 갖추어야 할 여러 덕목들을 교육받았다.
예를 들어 시아버지 영조는 소학<小學>과 훈서<訓書>를 별궁으로 보내 예비 며느리인 혜경궁이 공부하게 했다.
일상 생활에서의 예의범절가 수양을 위한 격언 등을 모아 놓으니 책들을 읽으면서 왕실 구성원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게 했던 것이다.
이때 혜경궁을 매일 가르친 건 그녀의 아버지 홍봉한<洪鳳漢>이었으며 때로는 당숙<堂叔> 홍상한<洪象漢>과 중부<仲父> 홍인한<洪麟漢> 오빠 홍낙인<洪樂仁> 등이 함께 오기도 했다.
책을 읽는 틈틈이 아버지 홍봉한은 궁중에서 매양 경계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도 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부모 곁을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혜경궁이 그 슬픔을 참지 못하고 종일토록 소리 내어 울었을 때도 있었다.
궁중에서는 “삼전<三殿>(당시 인원왕후 정성왕후 선희궁을 지칭함)을 공경하여 섬기시고 효성을 다하십시오 또 동궁<東宮> 왕세자를 섬기실 때는 옳은 일만 돕고 말은 더욱 조심하여 궁중에 위배되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하고 홍봉한은 그 딸이 궁궐에서 갖추어야 할 행독 양식을 가르쳐 주었다.

한편 별궁에서는 가례의식을 위한 물품을 미리 준비하기도 했으며 예행연습도 진행하였다.
이곳에서 예비왕비는 예복<禮服>을 만들기 위해 옷 치수를 쟀는데 그 내용은 대동기문<大東奇聞>에 자세히 실려있다.
정순왕후가 입궁하려 할 때 여관<女官>이 옷의 치수를 재고자 하며 돌아앉아 줄 것을 청하니 정순왕후가 정색하며 “너가 돌아앉을 수 없느냐”하여 여관이 황공해 하였다는 내용이다.
아직 예비 왕비임에도 불구하고 당돌했던 그녀의 모습이 나타난다.
별궁은 혼인의 절차인 육례<六禮> 중에서 친영<親迎>의식을 치르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이기도 했다.

친영은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예식을 올리고 신부를 맞이하는 의식인데 왕이 사대부의 집에 행차하여 신부를 맞이하여 오는 것을 왕실에 있어서도 신부집에 있어서도 부담이 되는 부분이었다.
이에 따라 별궁을 마련하여 이곳에서 친영 의식을 행함은 왕실의 위엄과 권위를 살리고 사가<私家>에서 국왕을 맞이하는 데 따르는 부담을 줄일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별궁에서 왕비 수업을 받고 있던 처자가 친명 의식을 통해 왕을 따라 본궁<本宮>으로 들어가면서 예비 왕비의 별궁생활은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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