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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암면 한반도 로드 - 마암면의 유래, 석마마을>
2020년 01월 10일 (금) 15:48:17 한태웅 기자 gofnews@naver.com

   
 
   
 
   
 

 

 

 

 

 

 

오늘 소개할 마을은 석마, 위계, 감동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고, 오래 전부터 두 마리의 석마를 수호신으로 여겨왔으며 마암면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마을, 석마마을이다.

석마마을 안길을 따라 도착한 경로당 앞 당산나무 아래에는 화강암으로 조각한 투박한 형태의 석마 두 마리가 자리잡고 있다.

제작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어 고려시대로 추정하는 암수 한 쌍의 석마상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보존되고 있다.

마을 이름이 이 석마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말 바위란 뜻의 마암면의 명칭 또한 이에서 유래했다.

옛날 석마마을에는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피해가 극심했고 이를 막고자 한 쌍의 돌말을 만들어 세우고 제사를 지냈는데 이후부터 마을에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때부터 석마를 마신 또는 마장군이라 부르며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겼고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석마 앞에서 마을의 태평을 비는 동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석마와 동제는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집단제의에서 말 숭배의식이 뚜렷이 남아있는 예일 뿐 아니라 한반도 남쪽의 농경문화 가운데 기마문화의 자취가 남아 있는 것으로 민간의 석마 중 크기가 크고 국내에서도 유일한 예라 중요한 민속자료라고 한다.

석마 경로당에서 위계마을로 향하는 길은 마치 수목원에 들어선 듯 한 풍경이 펼쳐진다.

길을 따라 작은 개울과 단풍나무가 줄을 잇고 서원 앞뒤로 은행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진 산책로가 있다.

위계서원이 다른 서원과 달리 독특한 점은 서원 앞에 후손들의 기념식수 10여 개가 줄지어 심어져 있다는 것인데, 이처럼 서원 주변이 정성스러운 관리 아래 공원처럼 조성돼 있어 데이트나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한편 위계서원은 조선 현종 때 함안이씨 선현 6명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흥선대원군 때 철폐되었다 1966년 다시 세웠다고 한다.

위계서원에서 길을 따라 아래로 300미터 쯤 내려오면 산과의 경계를 따라 논 가운데에 남방식 지석묘(고인돌) 10기가 분포하고 있었다 전해진다.

이 지석묘들은 현재 마을길가에 위치한 1기를 제외하고 흔적을 찾을 후 없는 상태이나 다른 역사자료를 통해 옛날에는 많은 지석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석묘에서 석마, 위계서원까지 석마에 터를 잡으며 살았던 사람들의 자취를 따라 걸어본 석마마을 한반도 로드는 무심코 지나첬던 마을 곳곳의 소중한 문화재를 만나고 배우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마암면의 17개 마을을 여행했던 한반도 로드는 석마를 끝으로 마무리한다.
/자료제공 마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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