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미래신문
최종편집 : 2022.5.27 11:06
뉴스 피플 기획ㆍ특집 사설ㆍ칼럼 포토 학생ㆍ시민(주부)기자 독자마당
> 뉴스 > 오피니언 > 기고
     
거류산과 엄홍길
2019년 12월 19일 (목) 20:06:10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강홍우 고성문협 자문위원
가을의 끝자락에 거류산에 올랐다. 오늘 등산을 작정하고 거류산을 바라보니 곳곳에 단풍으로 짜깁기를 했다. 지척에 두고 날마다 수없이 바라보는 거류산이지만, 일흔 생애 동안 거류산을 오르기는 겨우 너덧 밖에 안 된다. 그나마 종주를 하기로는 두 번째이다.
 
11시에 ‘엄홍길전시관’ 주차장에서 내렸다. 주차장은 근래 확장이 되었고, 8각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고성평야와 고성읍 시가지가 환하다. 전시관으로 오르는데 ‘고성이 낳은 희말라야 영웅 엄홍길(嚴弘吉)’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세계 여덟 번째 아시아 최초 희말라야 14좌 완등자’ 라는 비문과 좌대에는 엄홍길의 약력, 14좌 완등 일지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비석은 2001년 6월에 소가야산악회가 세운 것이다. 지금은 14좌를 넘어 세계 최초 16좌까지 등정을 했으며, 대한체육회에서 ‘2019.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했다.

현관에 들어서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관람을 시작했는데, 전시관 안내도 위에 ‘산다는 게 모험이라면 내게 있어서 도전과 모험은 오직 8,000m를 오르는 것이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전시관은 도입부로부터 1.2.3.4존(ZONE)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도입부에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는 주제 아래 태극기를 가슴에 안고 정상에 선 사진을 중심으로 여러 기록 사진들이 게시되어 있었다. 화살표 방향에 따라 관람을 했는데, 엄홍길의 출생과 생가. 가족사진. 도봉산 집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엄홍길은 1960년 9월 14일 고성군 영현면 봉발리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서울 도봉산 자락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게 되니 어릴 때부터 도봉산이 놀이터가 되었단다. 바닥에 새겨진 등산화 자국을 내 신발로 맞춰보니 2cm가량 작았다.

바닥 유리판에는 엄홍길 얼굴의 스크래치와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 이후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내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받아 주는 것이다” “‘산을 내려 와서 산을 보면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산에 오르면 그 곳엔 산이 없다” 는 등 어록이 적혀 있으며, 엄홍길 대장이 지은 책들도 전시되어 있다. 무사 안녕 ‘라마제’ 모습. ‘등산 장비’ ‘8,000m 16좌 완등의 신화’ ‘산이 허락한 세계 산악인들’  ‘그림으로 보는 등산 용품’  ‘설산의 등반 기술 ’등이 구분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출구 앞 전시실에는 ‘고성군 10대 명산’이 소개되어 있는데 거류산에서부터 선유산이다. 앞으로 시간을 내어 고성군내 10대 명산을 다 오르고 싶다. 마지막으로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다”는 글귀 아래  ‘엄홍길 대장의 발’이 대형 사진으로 걸려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

오른쪽 엄지발톱은 다 뭉개지고 8분의 일쯤 남았으며 다른 발가락도 거의 뭉개져있다. 등산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선두 주자가 되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엄홍길 대장은 네팔 히말라야 오지 마을에 16개의 휴먼 스쿨을 건립하는 등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음도 소개되어 있었다.

출구를 나와 자세를 가다듬고 거류산 등산길에 올랐다. 등산로 입구에 세워진 ‘거류산 등산 안내도’에는 한반도 닮은 당동만과 등산로 모형, 장의사 등이 소개되어 있었다. 거류산 지명은 소가야시대에는 태조산 조선 초에는 거리산 조선말에 거류산으로 불러졌단다. 거리로는 순환 코스가 7.7 Km이고 소요시간은 4시간 30분이었다.

11시 35분에 자연석으로 만든 등산로 첫 계단을 밟았다. 계단 위 묘지에는 벌써 동백꽃이 세 송이 피어있고, 주변에는 구절초 꽃이 곱다. 등산로 좌우에는 철쭉이 어깨 높이로 자라있고, 등산로 바닥은 빗자루로 쓸어 놓은 듯 말끔하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등산 팀들이 매달아 놓은 리본들이 신이 났다. 아! 이게 무슨 조화인가? 진달래꽃이 10여 송이 피어 반긴다. 
 
곧 99계단의 목조 계단에 올랐다. 조그마한 돌탑 위에 장승이 3개 세워져 있는데, 세 장승 중 오른쪽 장승에는 ‘종오소호(從吾所好.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좇아서 함)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제 땀이 흐른다. 키 높이 정도의 양쪽 돌탑이 문설주처럼 세워져 있고,  그 위에 4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현 위치 번호가 적힌 말뚝이 서 있다. 소나무 노근들이 등산객의 발길에 닳아 반쯤 벗겨져 안쓰럽다. 이제 좌우 송림으로 조망이 여의치 않다. 벤치가 2개 놓여 있어 앉아서 생수로 목을 축였다. 바위산 중간에서 둘러보니 거제. 통영 일부와 안정가스기지. 조선 단지 등이 보이고, 통영 1터널로 차량들이 드나든다.

송곡마을 아래 다랑이 논들은 비어있고, 마동 농공단지, 벽방산 등이 눈앞이다. 남서쪽에는 고성만이며 고성읍 시가지, 고성평야가 펼쳐져 있다. 바위위에 남녀 10여명의 환경 요원들이 점심 식사 후 쉬고 있다. 이들이 여기까지 등산로를 청소 해 온 것이었다.

이어 ’지적 삼각점‘ 즉 측량기준점 표지가 있고, 저 아래 장의사가 보인다. 한반도 모형의 당동만을 조망하기에는 여기가 최적인 것 같아 휴대폰으로 사진을 몇 판 찍었다. 1시 15분에야 평지 바닥에 주저앉아 배낭에 지고 온 두유 밀감 떡 초콜릿 등으로 허기를 채웠다. 

복원된 소가야성이 반듯하다. 주변에는 옛 성터에서 무너진 돌들이 흩어져 있고, 그 돌들로 탑을 쌓고 있다. 길을 잘못 들어 마른 풀을 헤집고 정상에 서니 2시 10분이다. 무려 2시간 40분이 걸렸다

정상에는 안테나와 산불 감시 초소, 표지비석, 조망 안내도 등이 설치되어있다. 표지비석 전면에는 한자로 巨流山, 뒷면에는 ‘고성군민의 위상은 여기서 발원한다.’라고 적혀 있다. 사방을 둘러보니 과연 고성의 10대 명산 중 으뜸으로 꼽힐만하다. 2시 반에 하산을 시작했다.

예전에는 엄홍길 대장과 거류산은 그다지 인연이 있은 건 아닌데, ‘엄홍길 전시관’이 세워지고 지금은 경향 각지에서 많은 등산객이 몰려온다. 이제 거류산은 고성군내 10대 명산을 넘어 전국의 명산이 될 발돋움을 하고 있다.
고성미래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고성미래신문(http://www.gof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 163(2층)  |  대표전화 : 055)672-3811~3  |  팩스 : 055)672-3814  |  사업자번호 612-81-25521
등록번호 : 경남 아 00137(인터넷신문)  |  등록일 : 2011년 4월 7일  |  발행년월일:2011년 4월 20일  |  발행인ㆍ편집인 : 류정열
청소년보호책임자 : 한태웅
기사 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 및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2011 고성미래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of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