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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사회에는 고립화되기 쉽다
2019년 11월 15일 (금) 11:12:24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지금 우리사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 더 많은 피로와 더 많은 고립을 경험하는 시대로 주행하고 있다.
그동안 급성장을 해야 했던 한국사회는 급속경쟁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피로한 사회, 혐오한 사회, 싱글 사회라는 어두운 과정을 감당해야 하는 급속한 상황에 처해있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 사회는 타자에 무심하거나 타자를 부정하는 자기중심의 삶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회는 자기놀이에 몰입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어느덧 우리는 내 옆에 누가 있다는 것에 불편하거나 이를 어려워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런 사회일수록 각자는 서로 고립감을 더 많이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고립은 우울을 낳거나 망상을 낳기도 한다.
이처럼 오늘의 개인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타자와 개방적 관계, 구체적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융합불안과 분리불안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즉 오늘의 개인은 한편에서는 누구와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는 융합불안을, 다른 한편에서는 자기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자기와 분리될까봐 걱정하는 분리불안을 겪고 있다.
어느 사회나 경쟁이 심하면 그 경쟁에서 성공한 자는 성공한 자대로, 실패한 자는 실패한 자대로 저마다 타자에 대한 걱정에 휩싸이게 된다.
성공한 자는 다음번에 일어날지 모를 실패를 걱정하며 실패한 자는 다음에 이어질 또 다른 실패를 두려워하며 타자에 대한 한없는 의심과 불안을 갖게 된다.
이런 사회 속에 살아가는 개인은 타자를 정복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은 채 자기하고만 관계하는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성공한 자는 성공한 자대로, 실패한 자는 실패한 자대로 저마다 자기놀이에 점차 많이 쏠리게 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증가하는 사회일수록 자기에 대한 애착과 신뢰는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사회의 개인은 자기놀이에 더 탐닉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고립화는 이와 같은 현실로 경도될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인터넷에 기초한 스마트폰 사회가 되고 인공지능에 기초한 로봇사회가 되면서 이런 일은 더 심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인공지능 사회로 이행하면서 반려동물과 함께 했던 현대인은 반려로봇으로 향하는 경향도 보여주고 있다.
사회가 복잡하고 경쟁이 심할수록 인간은 그만큼 더 많이 사유해야 하고 이로부터 비롯되는 피로도 더 많이 안고 살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현대인은 단순하게 사는 것을 더 많이 열망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복잡하게 생각하는 인간보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존재를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현대인은 복잡한 어른보다는 단순 순박한 아이를, 계산하는 인간보다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동물을 더 선호하며 자기를 위해해주고 자기를 긍정해주는 존재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인공지능 사회에 출현한 지능적 존재는 이제 인간에게 자신의 정신노동에서 비롯되는 수고를 덜어주는 차원을 넘어 피로하고 우울한 자신에게 반려자가 되어가고 있다.
근자에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로봇도우미, 로봇상담사, 로봇연인 등은 이런 시대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자신을 사랑하기 보다는 기계로봇을 사랑하는 상황이 더 증가할 수도 있다.
오늘의 사회가 이런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런 사회로의 이행을 우리는 긍정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걱정해야 하는가
전자두뇌의 출현이 인간이 행해야 하는 정신노동의 수고를 덜어주기는 하지만 인간에게서 정신노동의 기회를 앗아가고 있으며 전자두뇌의 출현이 인간의 정신적 외로움을 덜어주기는 하지만 자연인에 대한 사랑을 앗아가고 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부담의 수준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끼는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기계를 택할 수밖에 없는가
오늘의 인터넷 사회와 인공지능 사회는 우리에게 이런 근본적인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현대사상에 중심을 이루고 있는 해체주의는 이런 시대정신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근대인은 자신의 자유와 존엄성을 찾기 위해 믿음의 불행을 사유의 철저함으로 대체해야만 했다.
로봇은 몸을 사용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몸이 되어줄 수 있으며 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반려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절대적으로 추종하여 옆에 있는 인간을 돌보지 못하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로봇을 절대적으로 부정하여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을 외면하는 것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학과 공학이 만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른바 인문공학이 필요한 시대이다.
인간과 기계의 상생의 길은 인문학과 공학의 상생의 길이기도 하다.
인문학을 통해 인문적인 기계를, 공학을 통해 행복한 인간을 가능하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미래를 긍정적으로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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