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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과 퇴계에 나타난 설화
2019년 07월 19일 (금) 10:05:57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남명 조식<曺植>(1501-1572)은 조선 중기를 살다 간 학자로서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이다. 그는 경상도의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여 좌와 우로 나누던 조선조에 경상우도에 자리 잡고 살아가면서 학문과 성리학에서 우뚝한 족적을 남긴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 사람들에게 신비한 표상으로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런 점은 그의 삶이 보인 치열한 정신적 높이 현실에 대하여 준엄한 대응 자세 제지들에 대한 철저하고 치열한 교육 바다같이 넓은 아량으로 살다 간 처사로서의 삶은 조선국을 대표하는 선비의 삶 가운데 오직 하나로써 우뚝하게 자리 잡으면서 설화라는 문학 형태에도 즐겨 다루어지는 대상이 되어왔다. 설화를 통해 남명은 고고한 인격자의 초절 한 인간성을 탈각하고 살아 숨 쉬는 우리 가까이의 평범하고 친숙한 인간적인 모습으로 거듭났다. 남명 설화는 인물 설화에 속하는데 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의 주변에서 그와 친우를 맺었거나 제자로 지냈던 인물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남명 설화에는 퇴계<退溪>(1501-1570)가 많이 등장하여 남명의 인격적 특성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여 주목해 보아야 한다. 남명과 퇴계 사이에 있었던 다양한 사실과 관련 이야기를 경북대 정우락 교수의 책인 ‘남명과 퇴계사이’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구체적이고 세밀한 부분이 거의 빠뜨려지지 않고 서술되어 있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남명과 퇴계는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서로를 인식하면서 그 지역을 대표한 인물이고 학자로서 몇 가지 점에서 서로 다른 태도로 취했다. 대표적인 것은 학문 방법을 두고 벌어진 태도의 차이다. 이를 두고 이익<李瀷>(1579-1624)은 “퇴계는 소백산 아래에서 태어났고 남명은 두류산 동쪽에서 태어났다. 같은 영남 땅인데 상도<上道>는 인<仁>을 숭상하고 하도<下道>는 의<義>를 숭상하였다. 학문의 기질이 퇴계는 바다와 같이 넓고 남명은 산과 같이 높다”라고 하여 두 인물을 대조하여 설명했다. 이런 차이가 남명 설화에 그대로 수용되어 퇴계가 남명 설화의 당골로 등장하고 있다.
▶남명 제자 정인홍의 일화
①합천 해인사 중들<승님>은 정인홍의 눈동자 넷을 두려워한다.
②정인홍과 김굉필이 퇴계에게 배우려 안동으로 찾아간다.
③퇴계는 김굉필에게는 정산적인 점심상을 차려준다.
④퇴계는 정인홍에게는 개다리상을 차려준다.
⑤정인홍은 밥을 먹지 않고 나와 버려서 퇴계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⑥퇴계가 정인홍에게 박절하게 대한 것은 정인홍이 역적이 되어 자신까지 못살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⑦남명은 정인홍이 역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제자로 받아준다.
⑧남명이 벽장에 구렁이를 숨기고 보살핀다.
⑨남명이 출타하고 없는 틈을 타 정인홍이 벽장의 문을 열고 구렁이를 눈으로 바라보아 죽여버린다.
⑩남명은 정인홍이 구렁이를 죽였다는 걸 알고 있다.
⑪구렁이의 죽은 혼이 정인홍의 사촌 형수에게 붙어 아들로 태어난다.
⑫이를 안 정인홍이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죽였으나 세 번째는 죽이지 못하고 살려준다.
⑬합천에 내려와 독상을 하던 정인홍이 폐비의 반대 의견을 편지로 보낸다.
⑭정인홍의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던 심부름꾼에게 길을 돌아가라고 당부한다.
⑮심부름꾼이 지름길로 가다가 정인홍의 당질이 군수로 있는 성주에 들어간다.
⑯당질이 편지의 내용을 폐비 찬성 의견으로 고쳐서 보내어 정인홍이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정인홍은 벼슬이 높아지자 사색당쟁의 주동자로서 국가에 공헌이 많은 정철, 윤두수, 류성룡 같은 조정의 중신들을 모조리 탄핵하여 조정을 크게 어지럽혔고 급기야는 계축옥사까지 일으켜 영창대군을 증살까지 하게 했던 것이다. 그 모양으로 불의의 영화를 누리며 갖은 작패를 다 부리다가 마침내 인조반정 때에 참형을 당하고 가산은 모두 적몰되고 말았다. 그로 인하여 정인홍의 스승인 조남명도 참혹한 추형을 받았으니 그러한 사실로 미루어보면 퇴계의 사람을 식별하는 눈이 얼마나 정확했던가를 가히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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