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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속담
2019년 06월 28일 (금) 11:46:51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수십 마디의 말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 보다 하나의 속담이 상황을 더 잘 설명하거나 묘사해 주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티끌 모와 태산’은 절약과 노력의 중요성을 함축하여 보여준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어릴 때부터의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간명하게 설명해준다. 속담은 오랜 세월동안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면서 표현상으로는 세련되게 다듬어지고 내용상으로는 많은 사람의 지혜가 담기게 된다. 하지만 속담은 바로 그러한 속성으로 인하여 시대에 뒤떨어진 말로 전락하기도 한다. 한 때는 어떤 생활을 아주 적절하게 포착한 것처럼 쓰이던 속담이 후세에 와서는 시의적절하지 못한 말로 취급되거나 아예 써서는 안 되는 말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왕조 중심의 봉건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시대로 가족 중심의 자급자족 1차 산업 시대에서 최첨단 과학문명 사회 신자유주의 시대로 변화 했는데 속담은 이런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도 상전벽해처럼 바뀌어 왔다. 어쩌면 사회변화를 부지런히 잘 따라간다면 그건 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었다.”라고 말하는데 는 까닭이 있다. 100년 전 쯤 이 속담은 제법 그럴 듯하게 들렸을 것이다. 남성중심 사회인 조선시대에 여성은 인격적 대접을 받기 어려웠다. 더욱이 정치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어서 남성들이 정치하는데 대해 여성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을 섞지 못했다. 또한 이는 집안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더 권위 있게 행동하려 했다간 집안을 제대로 끌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을 억압하는 대표적인 속담이었다고 하겠다. 이 속담을 20년 전 쯤에 정신없이 들먹였다간 눈총깨나 받았을 것이다. 요즘은 이 속담 전체를 말하기는커녕 암탉이라는 말조차 조심스럽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이 속담은 있다고 하기도 어렵고 없다고 하기도 어렵게 된 것이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고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지위도 높아졌다. 이 속담 탓에 상당한 기간 동안 여성들이 고개를 숙이고 살았음을 누가 알겠는가. 어릴 때부터 이 속담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여성들이 과연 성인이 되어서 자아를 실천하며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쓰더라도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말이다. 교통이 불편하여 서울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질 때 버스를 타고 가든 기차를 타고 가든 비행기를 이용하든 어떻게든 서울만 가면 되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말은 참으로 비겁하고 사납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도 정당하고 합리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보더라도 몇 십년이 지나더라도 그 정당성과 합리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 수백의 군민을 학살하면 안된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절차를 어기고 법을 뛰어넘어 아무렇게나 판단하고 결정하여서는 안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생각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모로 가지 말고 정도로 가라고 해야 한다. 이 속담 때문에 결과와 과정을 무조건 정당화 하는 가치전도<價値顚倒> 현상이 우리사회에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속담이 있다. 개같이 버는 건 어떻게 버는 것일까 개한테 좀 미안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음식에 넣어서는 안 될 화학물질을 넣고 비위생적으로 제조하여 함량도 모자란 먹거리를 파는 기업과 노동자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이 기업의 이윤만 추구하며 노조를 탄압하는 기업과 개발 정보를 빼내기 위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투기꾼, 더 큰 이권을 챙기기 위해 정치권에 차떼기로 뇌물을 갖다 바치는 재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개같이 버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날치기, 아리랑치기, 들치기, 소매치기, 사기꾼, 날강도도 개같이 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벌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게 번 사람들이 정승같이 쓸 수 있을 리 없다. 십중팔구는 자식 대대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살기에만 몰두하고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정승처럼 쓰지는 않을 것이다. 개같이 번 사람을 절대 정승같이 쓸 수 없다. 정승같이 쓰기 위해서는 비록 몇 푼 안 되는 돈이라 하더라도 정승같이 벌어야 하는 것이다. 혹 정승같이 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진사나 참판처럼만 벌어도 좋을 듯하다. 이 속담을 보면 우리 겨레에 정말 개같이 돈 버는 사람이 많았음을 알 수 있겠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윗사람이 근엄하게 말씀하실 때 불쑥 불쑥 질문을 던지지 말라는 말이다. 다들 앞으로 나란히 하면 그냥 똑같이 앞으로 나란히 하라는 말이다. 위에서 시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말 것이며 이 속담은 독재 정권 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부모세대가 자주 해주던 말이다. 이 속담을 듣고 자란 사람이 자기주장, 자기의견, 자기논리, 자기생각을 갖고 살기란 얼마나 어려울까 싶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해도 안 될 일을 위해 헛심 쓰지 말라는 속담이다. 이는 불가능하고 무모해 보이며 도저히 승산이 없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실제로 계란을 가지고서 바위를 부수려면 도대체 몇 개의 계란이 필요할까. 이 속담은 거대한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가 그에 대항하는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장애인들의 투쟁을 비하하고 무시할 때 곧 잘 쓰인다. 역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청년에게 부모세대들이 하던 말 가운데 하나다. “아무리 그래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니 잠자고 살아라”라고 말하곤 했다. 과연 그런가.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바위는 죽은 것이지만,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 긴 말이 필요 없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바위는 반드시 부서질 수밖에 없다. 계란은 무수히 많고 살아 있으며 던지기에 딱 좋은 크기이지만 바위는 무식하게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무생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길지 생각해 보나마나다.
‘인부족 세부족’ 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 숫자도 모자라고 세력도 모자란다는 말이다. 독재권력에 대항하여 민주화 운동을 하는 자식들에게 부모들은 “인부족 세부족이다. 그냥 참아라”라며 설득했다. 참으로 패배주의를 심어주는 말이다. 인부족 세부족이니 더 많이 모이고 더 크게 단결하고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치밀하게 싸우라고 말하는 어른은 별로 없었다.
많은 속담은 우리 조상들의 삶 속에서 오랫동안 다듬어지고 윤색되고 포장되면서 지혜와 용기 그리고 관용의 미덕을 담고 있다. 속담에는 그 국민의 특성이나 정신 생활양식 등이 반영되어 있어 한 민족의 역사나 풍속 사회구조 등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속에 누렇게 잘 익은 가을 들판의 벼논에 듬성듬성 섞여 있는 피처럼, 양반계급과 지배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릇을 하는 못된 속담이 섞여 있다. 여성을 비하하고 특정 직업인의 인격을 모독하는 속담들이 제법 석여 있다. 우선 생각나는 몇 가지를 적어 봤는데 찾아보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러한 속담들은 우리 삶을 지혜롭게 하고 웃음 짓게 하기 보다는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짜부라뜨리고 상상의 날개를 꺾어 버려서 체제에 순응하기만 하는 순치<馴致>된 인간들을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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