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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聖學十圖>
2019년 06월 14일 (금) 14:00:47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성학십도란 퇴계 이황 선생이 만년<68세 임종 2년 전>에 소년왕 선조<17세>에게 바친 유교적 이상과 현실적 실천의 모범을 열 폭의 그림과 해설로 기록한 문헌이다. 성학이란 국가 최고의 통치자로써 임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터득해야 할 학문을 의미한다. 아울러 일반인들의 경우라면 이상적 경지에서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을 말한다. 성학십도는 퇴계 철학이 집대성 되어있는 책을 말한다. 선조임금의 부름에 퇴계는 계속해서 노환가 무능하고 부덕 등으로 이유로 하여 사직서를 올려 결단코 벼슬을 받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선조왕은 집요하게“그대의 사직서를 읽어보니 겸양이 너무 지나치오 그대의 덕이 높고 학문이 정대하여 여러 김금에 걸쳐 나라에 공이 많았음을 어느 누가 모르리오 내가 경을 바라는 것을 북두성을 바라는 것과 같으니 그대는 병을 억제하고 저정에 머물러서 나의 어리석고 부족한 자질을 도와주도록 하오”라는 등의 교지<임명장>를 5개월 동안 일곱 번이나 연달아 내려 보낸다. 이러한 선조의 집요한 부름에 못이겨 퇴계는 68세 되던 해(1568년) 7월 서울로 간다. 퇴계는 성학십도를 만들기 전에 상소문<戊辰六條疏>을 올린 바 있다. 즉 그 해 8월 임금이 지켜야 할 여섯가지 조목을 밝힌 7,400자 분량의 상소문을 올린다. 무진은 선조가 새 임금으로 즉위한 해의 간지이다. 명종은 후계자 없이 죽었다. 그래서 명종의 배다른 동생 덕흥군의 셋째 아들을 양자로 삼아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그가 바로 선조이다. 따라서 선조는 자칫 양가보다는 친가의 사적인 정에 끌리게 되고 또한 그런 틈을 타 주위의 음모에 휘말려 왕통이라는 공적 계통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었다. 더욱이 선조 즉위 당시에 제12대 인종의 비<妃>와 13대 명종의 비<妃>가 생존해 있었다. 인종과 명종의 왕위 계승으 둘러싼 인척간의 갈등을 지켜본 퇴계는 두 비의 불화가 왕실의 혼란 뿐만 아니라 당파 간, 나아가서는 국가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예견한 것이다. 노학자 퇴계는 소년왕 선조에 대한 근심을 읽어 내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퇴계는 선조를 위해 아래와 같은 내용의 무진육조소를 올린 것이다. 당시 궁중 내부의 상황에 대한 퇴계의 세밀한 진단을 바탕으로 제시된 선조의 처신, 그리고 선조가 성군이 되도록 자아 수양을 독려하는 내용이다. △첫째, 왕통의 계승을 소중이 여겨 효성이 지극하고 온전히 할 것 △둘째, 참소하고 이간하는 무리들을 막아서 인종비와 명종비와 친절하게 지낼 것 △셋째, 성학<聖學>을 독실하게 읽어 정치의 근본을 세울 것 △넷째, 도덕과 학문을 밝혀 백성의 마음을 바르게 할 것 △다섯째, 임금의 뜻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을 골라 세상의 사건들을 올바르게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할 것 △여섯째, 정성스런 마음으로 자신을 닦고 백성을 살펴 하늘의 뜻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 이 가운데서도 성학을 독실하게 하여 정치의 근본을 세울 것이란 조목은 매우 중요하다. 퇴계는 성학 즉 군주가 스스로 성인의 경지 즉 성군<聖君>에 이르는 것이야 말로 정치의 근본됨을 말하고 있다. 성군은 바로 서양 고대의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왕<哲人王>에 해당한다. 퇴계는 무진육조소를 올리고 나서 학문에 열심히 하였던 선조에게 경연<經筵>에서 아홉 차례나 시강<詩講>을 했다. 경연에 참여한 퇴계는 늙고 병약한 자신의 기력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더군다나 어린 선조의 학문적인 이해 능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국가와 군주를 위해서 가장 값인 일을 한 다음 정계에서 은퇴 할 결심을 하게 된다. 무진육조소를 올린 3개월 뒤 1568년 12월 초하루에 퇴계는 선조를 위해 성학십도를 만들어 올린다. 성학십도에서 퇴계는 이렇게 말한다. “신은 학술이 거칠고 언변이 서투른데다 질병까지 잇다라 시강<詩講>을 드물게 하였는데 추운 겨울부터는 전폐하게 되었습니다. 신의 죄가 만번 죽어 마땅하여 걱정스럽고 두려워 어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처음에 글을 올려 학문을 논한 말<무진육조소>이 전하의 뜻을 감동 분발시키기에 부족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뒤 경연<經筵>에서 여러번 아뢴 말씀(같은 해 아홉차례 걸쳐 행 한 시강)도 전하의 슬기에 도움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성학 십도를 바치고 귀향한 퇴계는 2년 뒤 1570년 70세로 세상을 떠난다. 크게보면 전체 내용은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공부 수행 수양을 해야 하는가)를 말한 것이다. 이러한 논어의 근저에는 항상 경<敬>의 철학이 깔려있다. 경은 매사 매순간 주의 집중하며사심과 욕망을 공심<公心>과 천지의 도리로 이끌어 가는 원리이자 태도이다. 퇴계는 소년 왕 선조가 매사 매순간 주의 집중하며 사심과 욕망을 내어선 안되며 항상 공심<公心>과 천지의 도리<道理>에 입각하여 잘 이글어가야만 조선국이 안정된 나라로 유지 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런 통치 철학을 제안한 것이다. 물론 당시 이반 학자들에게도 인생과 사회정치 활동에 필수적  핵심적인 이념적 강령이자 실천방법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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