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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론
2019년 05월 17일 (금) 11:52:05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학자는 이념적 편향성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진실을 외면하는 태도는 학자가 아니다. 일부 학자들은 특정 이념에 편향되어 있거나 터무니없는 아집으로 일관한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온갖 쌍욕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은 더없이 고상하고 오류가 없는 이라 착각한다. 특히 사상이나 이념에 대한 객관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청소년들에게 일방적이고 편향된 이념과 가치관을 심어주면 그것은 마치 컴퓨터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침투 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학생은 대학을 다니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편향된 이념에 사로잡혀 다른 일체의 이념과 가치를 거부하게 된다. 그리하여 극단적 이념의 편견을 갖게 되고 사회와 국가에 대해서도 편향된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학생들을 자신의 편향된 이념을 전달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교육자가 없는지 경계해야한다. 정치권에 아부하고 정의<正義>를 비웃으며 스스로 이념의 한편에 서서 철학을 재단<裁斷>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념을 거꾸로 철학과 사상을 재단하면 큰 불행이 온다. 그 대표적 경우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다. 당시 3천만 명 이상이 죽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 화학과 물리학을 열심히 공부한 인문학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왜 그 반대를 위한 연구를 할 수 없었을까. 신뢰를 주지 못한 정부도 문제이지만 진리탐구보다는 이념적 편향성을 우선시한 학자들이 더욱 큰 문제이다. 지조는 학자가 지켜야 할 의리이다 일찍이 조지훈(趙芝薰)(1920~1968)은 “지조<志操>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생명이며 지도자의 의무이다. 그러나 선비가 지조를 잃고 변절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의무와 숭고한 절개를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사회에 이러한 지조를 지닌 한사람의 학자가 얼마나 많은 사회적 정화력<淨化力>을 가지고 있는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지금도 한국의 여러 지방에는 그 지방의 정신문화를 대표하는 선비와 학자들이 있다. 이분들은 학문정신과 함께 선비로써의 지조를 지켜나갔다. 학자는 지성과 양심의 인격을 갖추고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지조를 지녀야 한다. 만사를 환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식을 갖추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인격 함양에 힘써야 한다. 그것이 학자의 지조이다. 한국 역사에서 이상적 학자의 표준은 선비이다. 선비의 한국사회에서 건전한 사회지도층 혹은 사회학적 개념으로 여론주도층의 모델이 되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사회에서 존경해야 할 인물은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를 가지고 창출하며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학자의 양심은 사회의 문화적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도의 간디(1869~1948)는 일하지 않고 얻은 부는 큰 죄악이라고 말하였고 원칙 없는 정치는 사회를 망친다고 하였고 가진 자가 베풀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이라고 하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 세 가지 죄악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지금 우리의 정치는 어디로 봐도 당리당락만 존재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의리는 없다. 노동하지 않고 호의호식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아니 귀족 노동자도 많고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람도 많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만 즐거우면 된다. 도덕시험은 백점인데 도덕행위는 영점인 사람들이 많다. 땅콩회항으로 불리는 조현아 사건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부도덕한 기업주는 많은 사람의 삶의 의지를 빼앗는 식인 공룡과도 같다. 많은 교회와 사찰들은 신도들의 헌금을 모아 호화사치와 건물 높이기에 몰두하고 신도들을 위해 군림하려 하며 이를 대물림 하고자 한다. 자기희생 보다는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정치의 한편에 서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한다. 19세기 선각자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세상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는데 하나는 옮고 그름을 가르는 저울이며 다른 하나는 이로움과 해로움 가르는 저울이다. 이 두 가지 저울에는 네 가지 큰 등급이 있다. 무릇 옳음을 지켜서 이로움을 얻는 것이 가장 상위이며 그 다음은 옳음을 지키다 해를 당함이며 그 다음은 그른 것을 쫓아 이로움을 얻음이며 최하는 그른 것을 쫓아 해로움을 얻음이다. 라고 하여 사람이 지켜야 할 행동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옳음을 지켜서 이로움을 얻는 것 보다는 자신의 사욕<私慾>을 추구하다 결국은 해로움을 당하는 풍조가 만연해있다. 해마다 학생들에게 만약 10억이 생긴다면 5년 정도 감옥에 가더라도 불법을 저지르겠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해가 갈수록 손을 드는 학생들이 점 점 많아진다. 참 슬픈 현실이다. 사고 공화국 뿌리 깊은 부정부패 기본과 원칙의 경시 등은 바로 쉽게 살리는 풍조와 아무리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닐까 스스로 반성하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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