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종가의 혈통과 그 뿌리는 고려 때부터 계계승승으로 가통을 이어온 숭고한 전통이다. 씨족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근본이다. 또한 가통의 출발점이며 씨족의 대표가문이다. 가통이란 쉽게 말해 그 가문의 문화이다. 여기에는 학문적 사회적 성취물인 다양한 기록문화 유교이념이 투영된 고택서원 제실 등의 건축문화 검약과 절제의 선비정신을 담고 있는 의례, 음식, 생활문화 등이 포함된다.
중요한 것은 이들 대부분이 선조에 대한 자긍심을 토대로 형성되고 전승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종가문화는 쉽게 단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되는 특징이 있다. 이런 배경에서 종가의 문화를 전통문화의 마지막 보루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전국 시군에서 제작한 관광지도를 들여다보면 종택<宗宅> 광고문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지역문화 단체에서 운영하는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의 답사코스에도 어김없이 지역 종가들이 포함되곤 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종가라는 개념이 가문의 개념을 넘어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자리매김 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숭고한 정신으로 종택의 솟을 대문은 늘 활짝 열려있다. 흥미로운 것은 종가의 솟을 대문을 드나드는 사람은 비단 후손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생면부지의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잇는다. 왜일까? 그야말로 종가는 정통문화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색창연한 고고한 예절을 연출한 고택파, 여기저기 걸려있는 숭고하고 예절 높은 현판, 그리고 봉제사 접빈객을 묵묵히 실천해온 종손파 종부의 조심성 있는 삶의 현실 그리고 수 백년 동안 전해 내려온 의례문화와 음식, 문화 등을 체험하면서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고고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1960년부터 시작된 산업화로 인해 연간 50만여 명의 농촌인구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이주했으며, 그 결과 농촌인구의 약 절반이 정든 고향을 등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마을 공동체<共同體>가 공동화<空洞化> 되어 버린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뼈아픈 상처도 많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농촌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젊은 사람은 도시로 떠나 버리고 회갑을 훌쩍 넘긴 백발의 이장이 이집 저집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광경을 흔치않게 볼 수 있는가 하면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마을자치기구가 제구실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또 농사지을 사람이 마땅치 않아 방치해둔 이른바 놀라는 땅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그 뿐인가 고령의 노부부가 이런저런 사연을 간직한채 살았던 집은 볼품없는 폐가로 전략해 버린지 오래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마을에는 사람의 온기를 마냥 기다리는 빈집들만 즐비하다. 산업화가 우리에게 안겨준 또 하나의 선물인 셈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혈연 공동체 중심의 전통문화는 비록 크고 작은 변화를 겪고 있지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묘사를 비롯한 각종 문중 행사와 중시조의 불촌위 제사등은 대표적 사례이며 그 중심에는 당연히 종가<宗家>가 있다. 실제로 종가는 음력 10월이 묘사나 불천위 제사 무렵이 되면 타지로 나간 후손들의 발길로 늘 북적인다. 또 명절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은 반드시 종가에 들러 종손과 종부의 안부를 묻는다. 종가는 자기존재의 근원지 곧 혈통적 정체성을 담보해주는 상징적 구심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사정으로 타지에 살고 있는 종손과 종부 역시 종가의 전통을 지키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종가는 후손들의 고향이기 때문에 이것이야 말로 종가의 오래된 전통이 거센 산업화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위풍당당하게 이어 내려 올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