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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둔장터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그날의 함성, 다시 한 번!
배만두‧최낙종 선생 등 고성 만세 시위 운동 이끌어
군, 오는 19일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식’ 개최
2019년 03월 15일 (금) 16:01:36 한태웅 기자 gofnews@naver.com
1910년 이후 지속되던 일제의 무단통치는 일본 동경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2.8독립선언과 고종황제의 붕어(崩御: 황제의 죽음을 일컫는 말)를 계기로 3.1 만세운동으로 전개됐다.
3월 1일 학생대표들은 독자적으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고 시민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파고다 공원의 군중들은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시가행진을 했다. 이들은 해가 질 때까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경상남도의 시위운동은 초기에는 부산과 마산에 ‘독립선언서’가 배포되는 데 그쳤으나, 3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치열한 시위 운동이 전개됐다.
 
▲ 고성 최초의 만세 시위 운동, 민중에게 커다란 자각과 용기를 전해주다.
   
▲ 배만두 선생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1919년 3월 15일 밤, 의열단에 가맹하여 제1차 암살파괴사건에 관련되었던 진주사람 이주현이 고성읍 선동리로 박진택을 찾아왔다.
이주현은 고성에서도 독립만세를 거행할 것을 설득하고 독립선언서를 전달한 후 돌아갔다. 이에 배만두, 이상은, 김상욱 등은 함께 3월 17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만세시위 거사는 1차 배만두, 2차 이상은, 3차 김상욱이 각 학생, 기독교인, 농민을 동원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누설되어 일본 헌병들이 배만두의 가택에 들이닥쳐 그를 검거하면서 결행되지 못하였다. 
이때 동경정칙영어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고성읍에 와있던 안태원은 귀향 중에 있던 서주조와 협의한 후 고성공립보통학교 학생들과 비밀화합을 거듭해 갔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지금 각지에 있어서는 일개 농부까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고성은 무엇 때문에 이를 결행하지 않는가? 지금이야말로 수수방관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하여 학생들에게 애국궐기 운동을 호소했다.
이에 안태원, 서주조를 주동으로 학생 200명이 3월 22일 정오 고성읍 시장에 모여 독립만세를 고창한 후 시위를 전개했다.
고성읍 만세운동은 경찰의 탄압과 주동인물의 검거로 오래 계속되지 못하였으나 민중들에게 커다란 자각과 용기를 불러온 단초가 되었다.
 
   
 
 ▲ 100년 전 배둔장터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 최낙종 선생
고종황제의 인산에 참여하기 위해 한성에 올라갔던 최낙종 선생은 서부 경남 의거에 앞장섰던 변상태를 통해 독립선언서를 입수했다. 최낙종 선생은 구만면으로 돌아와 허재기, 최정주, 최낙희, 최정원 등의 애국인사들과 밀회를 거듭하면서 한성의 정세를 전하고 한성의 3.1 만세운동과 같은 거사를 일으키기로 결의했다.
그들은 한문학자 이종홍에게 부탁하여 독립선언서를 요약하여 간략하게 작성한 후 이것을 필사하여 밤에 12개 동리에 비밀리 전함과 아울러 각처에 이를 첨부했다.
마침내 3월 30일 오후 1시경 구만면 중앙부에서 울려 나온 나팔소리가 구만면 전체로 뻗어나갔고 개천면‧마암면 동민을 중심으로 한 의거민 1천여 명이 국천 사장으로 모여 들었다. 
먼저 군중 앞에 등단한 최정원 선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이어서 허재기 선생이 공약 3장을 지킬 것을 굳게 다짐했다. 
최낙종 선생이 선두에 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독립만세 함성은 산야를 제압하고 태극기의 물결은 넓은 들을 덮었다.
이날은 배둔리 시장 장날이었다. 배둔리 시장은 고성 동북 7개면과 창원 및 함안의 수개 면에 인접하여 장날에는 많은 장꾼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대열은 10리 길을 걸어 서서히 배둔장으로 향했고 일본 헌병들과 경찰들이 달려와 총칼로 저지했으나 군중들은 굴하지 않고 저항했다. 
이들의 난폭에 격분한 군중은 헌병을 포위하여 크게 꾸짖어 성토하고 나팔수는 헌병이 탄 말귀에 대고 나팔을 불어제쳤다. 일 헌병이 울분을 참지 못하여 최정원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자 그는 태연히 가슴을 열어 제치고 총구를 맞이하였고 일 헌병은 그의 늠름한 기백에 눌려 물러섰다. 하루 종일 대한독립만세가 이어졌고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해산했다. 고성 최초의 성공적인 만세운동이었다.
 
   
 
▲ 그날의 함성, 다시 한 번!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고성군은 오는 19일 회화면 배둔리 3.1운동 창의탑 앞에서 ‘「제100주년 3.1절 기념」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식’을 개최한다.
‘「제100주년 3.1절 기념」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는 구만면 국천사장에서 만세삼창 및 나팔소리 재현을 시작으로 회화119안전센터까지 카퍼레이드를 실시하며, 회화119안전센터에서 창의탑까지 도보로 시가행진을 실시하여 100년 전 그날의 벅찬 감동을 재현할 예정이다.
회화면 3.1운동 창의탑 앞에서는 고성오광대의 ‘독립의 북소리’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헌화 및 분향, 독립선언서 낭독, 만세 삼창, 만세운동참가자 개인약전 및 유족소개, 오찬 등 군민이 함께 화합할 수 있는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최혜숙 주민생활과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자주독립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선양하고 나라사랑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하여 재현행사, 시가행진 등 뜻깊은 행사를 마련했다”며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의 염원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많은 군민의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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