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한 농부의 큰아들로 태어나자마자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다. 집마저 찢어지게 가난했다. 일찍부터 절름발이 오리 신세를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삶에 대한 욕망은 나의 생활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 조그마한 도시를 가본 사실이 없다. 산 너머 소도시 구경이라도 가볼까 해서 많이 아픈 척 꾀병도 부렸으나 실패였다.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산중 촌락에서 광주로 나왔다. 그때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광주 텃세 때문에 부딪쳐 계속 우울한 생활을 하였고 칼을 들고 다니는 교내 깡패들 때문에 기를 펼 수도 없었다.
국‧영‧수를 단행하는 담임선생들이 급우들을 상대로 개인 과외를 하였으나 나는 가정 형편이 어렵고 찢어지게 가난하여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이 몰래 배운 내용에서 시험문제가 나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의 압력에 짓밟혀 어쩔 수가 없었다. 성적은 떨어졌고 차츰 뒤로 밀려났다.
어느 날 아침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러서 갔더니 그분은 나의 볼때기를 잡고서 왕복 스무 대를 그냥 갈겼다. 나는 시원하게 맞았지만 겁이나 왜 때리냐고 물어 보지도 못했다. 50살을 넘긴 지금도 내가 왜 맞았는지 알 길이 없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데모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수업도 제대로 못하고 틈틈이 막걸리만 마셔댔다. 성이 안찰 때에는 홀라당 벗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그럭저럭 한 시절을 가로질렀다. 그 시절 주로 부르던 노래는 사회의 찬바람 이였고 후배들은 급사하거나 자살하였다. 밤을 지새우며 술을 마셨지만 별 희망이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끊임없이 삶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자취집을 전전하다가 어느 늦은 밤에 붕어빵을 씹으며 터벅터벅 비포장 도로를 새벽까지 걸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인생은 결국 어디론가 끝없이 약속 없는 길을 무작정 걸어야만 하는 것임을 알았다.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유학을 했지만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계속되는 아르바이트는 힘들었지만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생활은 불안정 하였고 미래는 불투명하였다. 한국인을 3류 취급하는 일본인들에게 분통이 터졌으나 참아야만 했다. 지문 채취를 거부하다가 다툼도 있었지만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 침묵하여야만 하였다.
학위를 받고 대학에 자리를 얻었으나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데모를 한 죄 때문에 십여 년을 동문 선배들이 괴롭혔고, 그 후 십여 년을 이런저런 이유로 동료들이 갈구하고 바랐던 것처럼 언제 사표를 내고 직장을 떠나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살아온 나날이 오늘에 이르렀다.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헛소리만 반복할 뿐이다. 각종 음해에 시달리고 잡무에 끌려 달리며 절망에 시달려 삼십년이 넘어 지났으니 봄날은 기분 좋게 가버렸다.
나는 늘 외톨이였고 왕따였지만 귀를 막은 채 내 길을 걷는다. 말끝마다 인문학은 구조조정 대상. 더구나 돈 안 되는 철학은 수십 년간 줄곧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학생들에게는 말발이 서지 않고 내 논문과 책 그리고 강의는 빛바랜지 오래이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가끔 울컥거려 강연을 하다가도 눈물을 닦는다. 우울증에 시달리다 일어서곤 하지만 삶은 어차피 무의미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이런저런 꿈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것임을 안다.
자식들에게도 마누라에게도 권위가 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는 누구에게 원망할 생각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이미 레임덕이었음으로 그냥 쿨 하게 누수(눈물)를 견디며 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