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에서 지난 17일 ‘올해의 사자성어’로 ‘엄이도종’掩耳盜鐘를 발표했다.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 는 뜻이다. 덧붙인다면 자기가 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난이나 비판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아무 소용이 없음을 말하는 고사 성어다. 매년 이맘때면 그해의 사회현상을 함축하는 한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사자성어는 교수신문에서 각 분야 교수들이 추천을 의뢰해 후보를 선정하고 교수신문 내부에서 5개의 후보로 압축한 다음, 후보 중에서 하나를 고르도록 하는 방식으로 선정된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엄이도종의 유래는 춘추시대 진나라 범무자의 후손이 다스리던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다. 그 때 백성 중 한 명이 종을 짊어지고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짊어지고 가기에는 종이 너무 크고 무거웠다. 망치로 깨서 가져가려고 종을 치니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 백성은 다른 사람이 종소리를 듣고 와서 종을 빼앗아 갈까봐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고 종을 깼다고 한다. ‘呂氏春秋’에 나오는 일화다.
 엄이도종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김풍기 강원대 교수(국어교육과)는 “FTA 문제라든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공격에 대한 의혹 등이 겹쳤지만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여론의 향배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생각만 발표하고 나면 그뿐이었다”며 “소통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엄이도종이란 말은 나라의 일에만 해당되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올해처럼 '소통'이 중요한 화두로 언급된 적은 드문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처럼 소통의 부재로 답답증을 느낀 적은 없었다. 이러한 사자성어가 채택된 것도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의 소통부재를 꼬집은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너나 할 것 없이 소통에 대해 인색하다는 것이다. 서로간의 경화가 생기는 원인들을 마치 제기된 문제에 대해 일방적인 논리로 정당화하는 방식의 공지만으로 문제가 해결된 양 착각하거나,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몽매한 사람으로 몰아가서 깨우쳐주려고 하거나, 아니면 감추거나 침묵해서 그 당사자가 지치고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이런 미숙한 대응으로 문제가 소멸되면 다행 이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잠복된 상태에서도 종양처럼 더 크게 전이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더 큰문제다.

 결국 한 이슈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토론하고, 깨지고, 다시 정비하여 그 문제를 소멸시키는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 소통의 문제가 불거지는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그래서 스스로를 전능하다고 여기는데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소통의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의 능력'이 아니라 '소통할 의지'가 우선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낮추고 상대나 조직원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소통의 시작이다 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은 꼭 자기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지게 되어 있다”라는 영국의 한 정치가의 말을 상기하면 사실 어떤 집단에 있어서 리더에 의한 소통의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것은 그 리더만의 문제가 아님이 분명하다. 결국 그 리더를 있게 한 것은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자성어로 장두노미(藏頭露尾)로 정한 것도 머리는 겨우 숨겼지만 꼬리가 드러나 보이는 모습. 진실을 공개하지 않고 숨기려 했지만 거짓의 실마리가 이미 드러나 보인다는 뜻으로 한해를 풍자했다. 물론 지난 2005년부터는 ‘희망의 사자성어’도 선정하고 있다. 지난해 선정한 2011년 희망의 사자성어는 ‘民貴君輕 민귀군경'이었다. ‘민귀군경’은 『맹자』 ‘진심’편에 ‘백성이 존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성어로 민본을 강조하여 국민을 존중하는 기대를 담았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까지도 이러한 사자성어가 왜 생겼는지 조차 모르는 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부디 고하건 데 높으신 분들(?)께서는 이러한 뜻을 잘 헤아려 우리 모두가 바라고 열망 하는 복지국가 건설에 매진해 주길 바란다.
 얼마 남지 않은 신묘년에 우리 또한 서로간의 소통을 반드시 이뤄내 임진년 새해에는 '엄이도종'이 먼 나라 이야기이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