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관(山海關)을 통과하여 만주벌판을 가로질러야 했다. 하지만 산해관에서 청나라 군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당시 북경으로 송환된 안추원은 얼굴에 낙인이 찍히는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안추원의 비원(悲願)은 한심하고 처절했다.

다시 2년이 더 지난 1664년 안추원은 마침내 청나라를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28만년만의 귀향이었다. 그가 사선을 뚫고 조선에 도착했을 때 조선조정에서는 고민에 빠졌다. 여전히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엄중히 금하고 있는 청나라 정치권 때문이었다. 하지만 28년 만에 목숨을 걸고 탈출한 자국 백성을 어찌 차마 돌려보내겠는가. 청나라의 정보원들이 알까봐 전전긍긍하고 쉬쉬하는 가운데 안추원은 고향을 찾았다. 그러나 고향에는 아무도 없었다. 병자호란이란 악독하고 몸서리나는 전쟁 중에 많은 가족들을 풍비박산 내고 말았던 것이다.

목숨을 걸고 다시 찾아온 고향이었지만 안추원은 당장 생계조차 막막하였다. 조선정부에서는 그를 받아들였을 뿐 생계대책까지 마련해 주지 않았다. 귀향의 감격도 잠시 뿐 배고픈 그에게 아무런 피붙이도 남아 있지 않은 고향은 그저 다른 이역이었을 뿐이다.

안추원은 절망 끝에 다시 북경으로 돌라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청나라의 귀환은 탈출보다 훨씬 위험한 일이었다. 그는 결국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청나라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아마도 그는 십중팔구 처형되었을 것이다. 인조대왕 재임 중에 탈출했다가 청나라에 도로 잡혀갔던 조선인 포로들이 청나라 군사에게 발뒤꿈치를 잘리는 형벌을 받았던 것을 고려하면 두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던 그가 온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옛날 전설과 같은 안추원의 비극과 원한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참혹한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수없이 안추원과 같은 사람이 처절하게 죽어 없어졌으니 국운이 불행하여 임금과 정치인의 현명하지 못한 탓으로 수많은 만초들이 처절한 고통에 신음해야 했지만 정작 비극을 불러왔던 당당하고 그 세력이 하늘과 같은 위정자들은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또한 강화도의 처절한 비극을 초래했던 영의정 김유의 아들 김경진은 정승 판서들의 국무회의에서 논란이 일어나자 자살하고 말았다. 그리고 청나라 군사와 싸움을 회피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임금과 백성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김자점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 영의정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참으로 처절하고 비참한 정치상황이다.

병자호란의 참혹한 참상을 떠올리면서 현실을 살펴보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암혹하고 참담할 뿐이다. 국가와 국민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 줄줄이 비리와 부정에 연류 되어 검찰의 취조를 당하고 형무소에 구치생활을 하게 되니 처절하고 비통할 일이다.

국가 장래를 책임질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치인들의 현실을 살펴보면 여야는 싸움박질 이나 하고 당리당락을 연출해 낸 장면을 바라보는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다. 수많은 생명들을 도탄에 빠트려 놓고도 자신의 과실을 책임지지 않고 수백 명의 젊은 여성들이 청나라에 끌려가서 청나라 오랑캐의 종노릇을 한 처절한 비극은 한심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참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내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다시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 된다고 했던가 정치권의 난맥상과 민생의 어려움 때문에 걱정이 쌓여가고 있는 오늘 370여 년 전  병자호란의 비극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초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