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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다운 삶을 누릴 권리 복지사회
2018년 01월 18일 (목) 18:59:43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장형갑 고성미래신문 지면평가위원
복지사회란 국민의 복지증진을 목표로 완전고용, 사회보장,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사회를 말한다. 또한 복지사회는 사회구성원인 국민들에게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가져다주기 위하여 ‘적절한 소득의 분배’와 원만한 사회적 환경을 보장한다. 이러한 사회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정신적 물질적 성숙과 정책이 조화로워야한다. 
이러한 조건이 자본주의체제에 스며들기란 다소 무리가 따를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금전의 가치는 갈수록 커지고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금전욕이 더 커진다. 때문에 아무리 금전욕을 채워도 충족되지 않는다. 부유함은 삶의 필요조건들을 채워 주지만, 끝없는 열망 때문에 완전한 만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반면 빈곤은 기본적인 욕구조차 채워주지 못함으로 개개인에게 고통을 준다. 극단적인 경우 생활고에 삶을 마감한다. 의식주로 대표되는 모든 삶의 조건이 금전을 통해 충족되고 그것이 삶의 목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돈이 많아도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와, 돈이 없어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를 놓고 본다면,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더 큰 불행일 것이다.
그러면 자본주의사회에서 복지가 의미하는 것과 개개인의 궁핍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고통 받는 개개인의 빈곤을 단순히 ‘남’이라 생각하면 풀리지 않는다. 우리 모두 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야할 인간 삶에서 개개인의 빈곤은 사회경제적인 측면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밤낮구별 없이 열심히 일하는데도 생계비조차 안 된다면, 이것을 개인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가, 사회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가? 관심을 갖고 사회를 둘러보면 개인이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단지 자본주의 성장과정에서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만들어지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가난한 개인이 증대한 것이다.
같은 일을 해도 고등학교 졸업생과 대학교 졸업생은 임금차가 클 수 있고, 같은 시간 노동을 해도 전문직과 육체노동자는 임금격차가 클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등학교 졸업생과 대학교 졸업생이 어떻게 같은 대우를 받고, 전문직종과 육체노동자의 임금이 같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들의 논리는 사회에 뛰어들기까지의 투자비용과 준비시간이다. 이는 존중되어야하는 부분인 동시에 복잡 미묘한 요소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속물근성으로 인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모든 개개인의 출발점이 다 똑같지 않다. 그것이 자본주의사회라는 말만으로 정당화하기에는 사회의식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가난한 사람은 대학에 진학은커녕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전문직을 갖고 싶어도 뒷바라지해 줄 가정 여건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냉정한 사회는 몇몇 개인의 성공사례를 들어 불우했던 성장과정에도 불구하고 성공했음을 덧칠하며 그것을 보편화한다. 아울러 모든 개인의 가난을 전부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진실로 사회가 공정을 추구한다면 출발상의 모든 개인차를 인정하고, 삶의 요건들을 충족하지 못하는 개인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책을 강구하는 것이 사회존속의 본질이다. 나만 잘살면 그만인가? 그런대로 살만한 사람들이 빈곤한 사람들의 삶을 개인의 무능으로 치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피상적 차원의 국가 지원으로 빈곤의 본질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부유층도 빈곤층도 아닌 가난한 중산층과, 경제 사각지대에 놓여 복지혜택을 받을 수 없는 자들은 허술한 제도에 눈물을 흘린다. 부모의 능력이나 개인의 환경에 따라 사회적 불편을 겪어야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사회인가? 모든 국민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사람 사는 사회다.
복지사회는 게으름을 방조하지 않는다. 거지를 도와주면 거지근성을 키워준다는 말은 사회적 맥락이 틀린 무식한 소리다. 가난한 사람 대다수가 거지근성을 지녀 가난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에게 모두 똑같은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 가난이 단순히 무능해서 빈곤한 처지에 놓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불량국가’의 ‘노암 촘스키’와 함께 전쟁애호 미국의 추악한 본질을 신랄하게 비판한 최고의 지성 ‘하워드 진’은 ‘오만한 제국’에서 “인간은 능력과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삶의 조건들을 부여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의식주를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달콤한 정경유착에 사회·정치가 게을러 복지의 영역을 넓혀나가지 못하는 현실을, 개인이 열심히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불량국가의 오만한 논리다. 
부자들만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노동자는 언제나 발바닥에 불을 붙여 별보고 출퇴근하며 소주잔에 시름을 달랜다. 뒤처진 사람이 조금 쉴 수 있도록 편안한 의자를 곳곳에 만들어주는 사회·국가적 배려, 그것이 복지다. 모든 사람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람다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치유할 수 없는 빈곤의 서러움에 근검절약은커녕 입에 풀칠조차하기 힘든 자들을 거지라 돌팔매질 말아야한다. 자본주의라는 거만한 논리에 피고름 만신창이 된 영육이 오늘도 세상의 그늘진 밑바탕을 움츠린 두발로 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것마저 짓밟혀 서러운 자아를 잃어갈 때, 우리사회는 어찌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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