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진성면 월정리 마을회관 앞 아담한 곳에 우아하고 오묘한 바위 하나 자리하고 있다. 바위 전면에는 이안장암(里案藏巖)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마을의 중요한 문서를 감추어 두는 바위다. 이 이안 즉 참여하는 구성원 명부를 동계안 혹은 동안(동리에서 중요한 문서)이라고도 한다.

 이 바위 속에는 이 지역 주민들이 임진왜란 직후인 1606년부터 1732년까지 이 마을 규약을 제정한 동리의 관련 제반자료와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10개 성씨의 족보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옛날의 원안은 사라지고 1779년과 1797년에 고쳐 만든 동리의 원안과 그 후 중수된 것을 여기에 넣어 보관해왔다. 이 마을에 사는 10개 성씨의 족보도 해방 이후인 1960년에 최후로 만들어 넣었다. 일부 가문에서는 높은 절벽에 구멍을 뚫고 귀중한 문헌과 족보를 보관한 사례는 전해오고 있으나 이 마을처럼 바위 속에 마을의 역사를 보관한 사례는 전국의 마을을 둘러보아도 그 유래를 찾기 어렵다.

 이 마을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동리 규약을 만들어 환난과 상휼을 실천하고 결속을 다졌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이 마을 사람들은 각각 뿔뿔이 흩어져 피난길을 떠나야만 했다.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마을의 역사기록과 문중의 귀중한 족보가 처절하게 소각되어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불에 타고 남은 향안과 각 문중의 족보를 수습하여 새로 옮겨 적었다. 그리고 향안과 각 성씨의 족보를 보전할 대책을 논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향안과 족보를 마을 원로가 사는 집에 보관하였다. 그러나 그 방안 역시 미덥지 못하였다. 그래서 일제 초기에는 바위 하나를 구하여 마을 앞에 가져다 놓고 그 아래에 네모난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오동나무 궤짝 속에 동안과 족보 및 숯을 넣어 바위 속에 몰래 보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년 음력 3월 3일 10개 문중 대표가 모여 바위를 둘러보고 문헌의 영구 보존을 축원하였다. 또 30년에 한번씩 각 문중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자료를 꺼내어 보존 상태를 살피고 그 사이 새로 태어난 후손이 있으면 동안과 족보를 새로 만들어 다시 바위 속에 넣어 보관하기를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에서는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족보를 넣는 순서도 정하였다. 순차적으로 순서를 바꾸어 넣음으로써 보존의 형평성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문종별로 순서를 정하여 돌아가며 모인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2년 4월 4일 이 마을 각 문중의 대표가 마을회관 앞 바위 곁에 모였다. 오래 전에 출향한 인사도 약속이나 한 듯이 참석하였다. 정자나무 아래에는 조촐한 주안상도 차려졌다. 바위 속에 감추어 둔 동안과 족보를 꺼내어 보존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도.

 바위를 개봉하여 보니 각 문중 족보와 동안(洞案)이 습기를 머금어 심하게 훼손되고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는 마을과 문중의 역사 기록을 영구 보존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결국 바위속의 고문헌 원본을 꺼내어 경상대학교 도서관에 영구 위탁하였다. 그리고 그 대신에 동안과 족보 사본을 제작하여 바위 속에 다시 보관하였다.

 바위속에 보관해온 자료 20점 중 중수구동안(重修舊洞案, 1779), 동안(洞案, 1797), 경임동안(經任洞案, 1913), 중수구동안(重修舊洞案, 1924) 이 5점은 조선시대 향촌사회를 운영하던 질서와 사회상을 잘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고 또 이 계회의 역사와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 학술적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2012년 7월 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21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