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 가득 마디와 마디사이에 들어찬 공허한 대나무의 그 어두운 내면을 본 적이 있는가. 어느 때는 태평성대의 피리가 되고 어느 때는 혁명가의 죽창이 되고 어느 때는 정수리에 쏟아지는 죽비가 되고 또 어느 때는 게으름을 때리는 회초리가 되는 그 대나무의 무궁한 변신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의 사는 집 뒤뜰에 서있는 대나무 아니면 천년의 숨결로 푸른 대숲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전라도 담양의 대나무. 이렇게 우리나라 전 지역의 산야에 편만해 있는 대나무. 조선조 선비들은 그 대나무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이런 상념으로써 대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대나무는 매화, 난초, 국화와 더불어 사군자 가운데 하나이다. 동양인들에게 이 대나무만큼 사랑받는 사물도 드물 것이다. 우리의 생활에 다양하게 쓰이는 용도 때문에 사람들이 애용하게 된 것이다.

대나무가 성장하여 피부와 내면이 단단해지면 건축자재로 또 옛날 철의 제품이 없을 때는 전투할 때 창으로 노인들에게 지팡이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옷걸이 등과 같이 가정에서 사용되는 기물들 낚싯대나 식물의 지지대 등도 모두 대나무로 만든다. 여름에는 시원한 죽질을 이용해 만든 죽부인(竹夫人)과 같이 기거하고 자기도 한다. 

대나무는 식용으로 많이 쓰인다. 땅에서 처음 돋아나는 죽순(竹筍)을 재취하여 채소를 만들어 먹는다. 이와 같이 대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눈 속에 죽순을 채취하여 어머니를 봉양한 맹종(孟宗)의 효도는 출천지 효행으로써 고사로서 널리 전하고 있다. 

또한 대나무는 한약재로 널리 쓰이기도 한다. 줄기 내부에 있는 종이처럼 얇은 껍질을 죽여(竹茹)라고 하는데 치열(齒列)과 토혈(吐血)을 다스리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대나무의 마디를 불에 굽거나 더운 물에 담가 죽력(竹瀝)이라 불리는 진을 내어 열병 치료에 쓰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부드러운 죽엽을 따서 차를 만들기도 하고 술을 담가 그 술을 하루 세 번 마시면 위장병이 없어진다고 한다. 

대나무를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이를 통해 선비들은 꼿꼿한 자태와 지조와 절개를 배우고자 했던 것이다. 백거이(白居易)의 양죽기(養竹記)는 바로 이런 의도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교서랑(敎書郞)에 제수되었다는데 장안에 임시로 거처할 곳을 정하였다. 이곳은 옛날 상국(相國)을 지낸 관파(關播)의 서재였다. 관상국이 여기에 대나무를 심었으나 그가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이 베어 광주리를 만들거나 빗자루를 만들어 거의 황폐화되고 말았다. 백거이는 이것을 안타깝게 여겨 다시 대나무를 기르고 그 이유를 글로 쓰게 되었던 것이다.

백거의는 이글에서 대나무의 여러 성질을 관찰하고 다시 이것을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결부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대나무는 현자와 같다고 했던 것이다. 대나무가 뿌리는 견고하고 성질은 곧으며 속은 비었고 마디는 곧은 것에 착목하여 현자의 지표로 삼았던 것이다. 고산 윤선도는 대나무의 이러한 측면을 인식하면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라며 노래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