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다. 황금 들녘 자고 나면 백악기 공룡이 고성 바닥들에 하얀 알을 낳고 있다. 요즘에는 농협 영농부나 규모 있는 농가 덕택에 훌륭한 농기계로 수월하게 추수를 하지만, 옛날 ‘추수’는 사람 손으로밖에 할 수 없는 수많은 공정이 있었다.  일일이 낫으로 볏짚을 베어 한 옴큼씩 짚단을 묶었고 또, 며칠을 뒤집어가며 말렸다. 그런 후 짚단을 군데군데 모아 ‘낟가리’를 쌓았고, 적당한 기일 그 낟가리를 한데 모아 타작(탈곡)을 했다. 실로 엄청난 노동이 필요한 고단한 공정이었다.

이에, 촌에 살면서 ‘낟가리’를 모르는 이 없겠으나, 퍽 젊은 사람을 위해 사전적의미를 짚는다. ‘이삭이 붙은 볏짚 등을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쌓아 올린 더미’가 ‘낟가리’다. 낟가리는 타작의 전 단계이며 타작 후 빈 짚단을 크게 육면체로 쌓은 것이 ‘짚동’인데, 그 짚동을 논 가운데 쭉 세워두고 시나브로 소먹이나 땔감으로 이용했다. 긴 겨울, 그 짚동에서 간혹 사랑이 싹트기도 했다는 전설도 있다. 전설의 ‘짚동’이 오늘날 곤포사일리지로 발전하여 알로 태어난 것이다.  

당시, 타작 전 볏짚을 묶어놓고 날씨라도 궂으면 농부 애간장이 새까맣게 타버린 게 일러 무삼하리오. ‘낟가리’를 해놓고도 밤비라도 내리면 비닐이나 천막을 씌우느라 질퍽한 논바닥을 까맣게 헤매고 다닌 적이 한두 번일까. 

무사히 타작을 마쳐도 끝이 아니다. 신작로 따라 쭉 말렸다, 걷었다. 수없이 반복하여 급기야 풍구 돌려 쭉정이 불어내고 차도서 튕겨온 돌멩이 죄다 가려내어 마지막 코스. ‘매상(벼 수매)’ 저울에 올릴 때쯤 근심 허리 약간 펼  뿐이다. 

‘매상 채비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매상’ 현장에 수십 차례 손수레로 옮겨 겨우 한숨 돌릴만하면 또, 등수에 맘 졸여야 한다. 수천 번 애정 어린 손길, 수만 번 관절을 접었다 펴야 추수 끝이 보인다.

어떤 해, 매상 기다리며 밤새 길가 쌓아둔 나락가마니 송두리째 도둑놈께 상납한 적도 있었지 아마. 그나마 무사히 매상을 마쳐도, 돈표 쥔 손으로 그다지 함박웃음 질 일도 아니다. 모내기 삯, 농약 값, 타작 삯, 자식 학비 부치고 나면 소먹이 짚단, 동네 방앗간에 재어 놓은 몇 가마니 식량이 전리품일 뿐이니 말이다. 

 우리 부모세대는 대부분 그랬다. 당신의 열악한 환경위에 오늘 우리가 풍요와 이런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것에 고마움은 느끼지만, 그렇다고 기계화된 요즘이 그때보다 더 여유롭고 풍요로운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럼에도, 어찌 보면 우리부모보다 더 열악하게 살다 간 빈센트 반 고흐가 있었다. 지금 살아 있다면 164살일 게다. 폴 고갱과 다투다 귀 자른 화가로 유명하지만, 고흐는 사실 ‘밀 낟가리’ 전문 화가였다. 

우리는 ‘벼 낟가리’ 문화지만, 네덜란드는 ‘밀 낟가리’ 문화이기에 자화상 그림 몇 개 빼고는 전체가 밀 낟가리와 밀밭 관련 그림이 대부분이다. 그의 노동과 농촌사랑, 밀 수확 이미지는 우리문화와 너무나 쏙 빼 닮았다. 더욱이 고흐보다 200년 전, 고흐의 선조 하멜이 조선에 와서 <하멜 표류기>를 남겼고, 우리 역사에 길이 이름 남긴 ‘박연’도 고흐의 선조라는 것에 묘한 동질감까지 든다. 그래서 가을들판 빈센트 반 고흐가 ‘낟가리’ 없는 고성에 와서 공룡 알을 그리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