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9년 <선조22> 10월 2일 안악군수 이축, 재령군수 박충간, 신천군수 한응인 등이 연명으로 황해도 관찰사 한준에게 올린 보고서 한 장이 천여 명의 선비가 역모에 관련되어 처형되거나 유배를 당하게 하는 기축옥사로 이어졌다.

이날 밤 조정에서는 삼정승과 육판서 의금부 당사관 등이 참석한 비상시국 대책회의가 열렸다. 정여립에 대한 체포령이 즉시 떨어졌고 의금부 도사가 체포의 명령을 띠고 황급히 역모의 진원지인 황해도와 전라도에 급파되었다. 그러나 이미 이 사실을 감지하고 있던 정여립은 자신의 활동지인 전라도 진안의 죽도로 달아났다가 이곳에서 스스로 칼을 거꾸로 꽃은 채 목을 찔러 자살했다. 그러나 역모의 주도자인 정여립의 자살은 폭풍정국의 시작일 뿐이다.

⌜연려실기술⌟의 기록에도 정여립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전주와 진안 등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체제에 불만을 품은 무리들은 점차 규합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을 꿈꾸다가 이러한 계획이 여러 경로를 통해 새어나가는 것을 알고 일거에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고 하였다. 

1589년 겨울에 서쪽으로는 황해도 남쪽으로는 전라도에서 일시에 병사를 일으켜 얼어붙은 강을 건너 성을 직접 쳐들어가 무기고를 불사르고 조은 창고를 약탈하며 심복을 도성에 배치한다는 것이 역모의 기본 시나리오였다. 

이어 자객을 나누어 침입하여 대장군 신립을 살해하고 거짓으로 교지를 꾸며 인근의 수령과 그리고 병사와 수사직에 있는 중역들을 죽이고 언관(言官)을 사주하여 전라감사와 전주부윤을 파직시키고 그 틈을 타서 일제히 궐기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었다. 

그런데 ⌜연려실기술⌟의 기록처럼 정여립이 군사를 동원하여 서울을 점령하여 역모를 꾀한 것이 사실이었을까? 

정여립이 역모에 대한 고변이 들어온 직후 자살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당시에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정여립이라는 인물이 지니는 강한 캐릭터와 행적은 역모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정여립은 국시(國是)인 주자 성리학의 의리론에만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며 이를 적극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잡술(雜術)에 널리 통했다. 그리고 박람강기(博覽强記)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총명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스스로가 ‘천하는 공물이니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리오’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였다. 

나아가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리오’ 라는 중국 성현 유하혜의 말을 인용하여 세습되는 절대군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도 하였다. 

그의 제자들 또한 선생의 이러한 이론은 고금의 유현(儒賢)들이 아직까지 말하지 못하였던 것이다고 하여 정여립의 사상이 보편적인 유학자들의 그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음을 언급하였다.

정여립은 사상적으로 당시의 주류적 흐름에서 이탈해 있었고 선조에 의해 낙향한 만큼 시국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회적 불만세력을 조직화 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고 많은 무사들은 거느리고 대동계를 조직했다. 

민가에서 뽕나무에 꽃이 피면 그 집주인이 왕이 된다는 말을 유포시키는 등 다양한 민심선동 책을 쓴 것은 이러한 그의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서분당이 격화되면서 반대파인 서인 쪽에서 정여립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그의 선동가적인 면모를 보다 과장했다는 점도 간과 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