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일제강점기. 하시마에 강제징용 당한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군함도’가 6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화제가 되면서 일제감점기 강제징용피해자와 그 유족들의 삶에 대한 재조명 이뤄지고 있다.

일제감정기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78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하시마 탄광에 강제동원 됐던 조선인은 500~8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하시마 징용자 중 현재 국내 생존자는 6명. 그중 한명은 고성의 어르신이었다.

생존자 어르신의 이름은 김삼수(96세). 미디어를 통해서 밖에 보지 못했던 하시마 탄광의 생존자가 우리 지역에 있었다니 놀라웠다.

이에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 2012년 발표된 ‘사망 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 탄광 강제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 실태 기초조사’에 따르면 1925년부터 1945년까지 하시마 화장 기록에서 한국인 사망자는 122명이었고, 이 중 고성군 출신자가 20%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

기록된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면 기록되지 않은 사망자와 강제징용 당한 사람까지 그 당시 고성군 사람이 얼마나 하시마에 있었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옥섬’이라 불린 하시마에서 살아 돌아온 김삼수 어르신을 만나 처참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922년생인 김삼수 어르신은 고성군 대가면 종생마을 출신으로 부모님, 6남매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가 당시 집안사람들과 동네에서 불리던 이름은 김해종이었다. 

19살의 나이에 동네에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속아 그를 포함해 종생마을에서만 4명이 강제징용 차에 올랐다. 

어르신의 기억에 따르면 들리는 이야기가 고성에서 150~160여 명이 간다고 했고, 이들은 통영 도산면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갔다.

이때 징용을 당하며 쓰게 된 이름이 ‘김삼수’였고 일본 이름으로는 강릉김씨인 그의 본관을 따 ‘고료산수’라고 불렸다고 한다.

김삼수 어르신과 고성인들은 처음부터 하시마로 간 것은 아니다. 당시 그 배는 규슈로 갔고 그들은 후루카와 공업에서 하는 탄광에서 일하게 됐다.

그 탄광은 육지에 있는데다 도망가기도 좋아 고성에서 함께 온 사람들은 40여 명 정도 남고 다 도망갔다고 한다.

후루카와 탄광에서의 대접은 좋지 않았다. 식사로 강냉이 껍질 밥, 국수 등이 조금 나왔고 돈도 많이 받지 못했다.

버티기 힘든 시절 하시마에서 지내던 고성 사람이 “후루카와보다는 하시마에 가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같은 마을 출신의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야반도주해 하시마로 가게 된다.

 # 날아가는 새만이 나갈 수 있는 섬. ‘지옥섬’ 하시마

그가 처음 갔을 당시 하시마 탄광은 오히려 후루카와 탄광보다 대접이 좋았다고 한다.

요즘 급식과 같이 밥을 원하는 만큼 떠먹을 수 있을 정도였으나 그것도 잠시.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식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오갈 곳 없는 하시마에서의 생활은 말 그대로 지옥과 같았다. 석탄을 캐기 위해 대부분 10시간 가까이 일을 했으며, 장비나 환경이 열악해 다치는 것은 일상이었다고 말한다.

김삼수 어르신은 그렇게 말하며 다리와 팔을 보여주는데 그때 박힌 석탄의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었다.

하루는 머리위로 부스러기가 떨어져 느낌이 좋지 않아 몸을 피했는데 곧 바로 큰 돌이 떨어져 죽을 뻔 했다고도 했다.

하시마 탄광에서 조선인이 죽으면 어딘가에서 불태우던가, 제대로 사망을 보고하지도 않는 채 바다에 버리던가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바깥으로 탈출하려고 하다가 걸리면 골병들게 맞는데 맞아 죽는 사람도 있었다.

김삼수 어르신은 “하시마에서는 날아가는 새나 나갈까 아무도 나갈 수 없었다”며 “탈출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런 참혹한 생활을 4년간 하던 중 고성군 개천면 출신의 최몽조 씨로부터 섬에서 나가는 배편을 마련해주겠다는 이야기에 친구와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당시 하시마에서 나가는 배는 가장 가까운 나가사키로 갔고, 배에서 일하던 사람을 섭외한 끝에 그들은 ‘지옥섬’ 하시마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나가사키로 탈출한 그와 친구는 우라카미에서 밥 짓는 일을 하는 고성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서 그들은 절 터를 닦는 공사 현장과 포탄을 피하기 위한 땅 밑 벙커를 구축하는 현장에 가서 노가다 일을 했다.

하시마에서 사람들이 도망친 그들을 잡으러 오기도 했었는데, 그때마다 며칠씩 도망가 숨어 지내다 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근처에 폭탄이 떨어져 죽을 고비를 넘겼고,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그는 다음날 아침 피난에 나섰다.

걸어서 2.5km 정도를 갔을까. 잠시 쉬기 위해 큰 나무 밑에 누워있었는데 ‘펑’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당시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피부가 드러난 부분은 모두 원자폭탄의 후폭풍으로 인해 타들어갔고 살이 벗겨졌다고 했다. 

김삼수 어르신은 이야기를 하며 입고 있던 반팔 셔츠를 걷어 보여주는데 셔츠로 가려지는 부분과 가려지지 않는 부분의 피부가 확연히 달랐다.

폭탄이 터진 뒤 다시 머물던 곳으로 돌아가니 대부분이 죽거나 죽기직전이었고, 그는 병원으로 호송돼 치료를 받았다.

뒤에 알고 보니 당시 원폭이 떨어진 곳을 반경으로 해 대부분은 즉사했고, 후폭풍 피해자 중 살 가망성이 있는 사람들은 우선 치료하고 살 가망성이 낮은 사람들은 죽는 것을 놔둔 상황이었다고 했다.

치료를 받은 그는 얼굴과 팔에 붕대를 감고 약을 발랐으며, 다시 붕대를 뜯어내면 피가 흘렀다.

김삼수 어르신은 “그때 피를 빼내며 독소가 빠진 덕분에 지금껏 살 수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나가사키에서도 기적처럼 살아남아 치료를 받으며 생활하던 그는 부산으로 나가는 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아둔 돈을 다 챙겨 귀국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5년여 만에 조국으로 돌아오게 된 그는 부산 영도다리에서 내려 마산으로 가기 위해 역을 찾았다.

기차표를 끊고 올라타니 지갑이 없었다. 당시 항구나 역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소매치기 일명 ‘쓸이꾼’들이 판을 치던 상황이었다.

마산에서 고성으로 갈 차비가 없었던 그는 역 창고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다음날 짐차를 타고 고성으로 왔다.

고성읍에 내린 그는 기월리를 지나 대가면 양화리, 갈천리를 넘어 고향인 종생마을을 찾아갔다.

집을 향해 가던 중 조카를 업고 길을 가던 어머니를 만났고, 어머니는 집안과 동네에 “해종이가 살아왔다”고 알렸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살아 돌아온 그를 구경하기 위해 집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돌아와서 지내다 보니 일본에서 알고 지낸 고향 사람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고, 소식이 끊겼다고 했다.

이후 27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슬하에 3남4녀를 두며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김삼수 어르신은 일제강제징용피해자이자 원폭피해자로 정부와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일부 지원을 받고 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아온 김삼수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너무 더운 날씨라 어르신께 드리려고 사간 쥬스를 오히려 기자에게 따라 주시며 “같이 한잔해”라고 말하신다.

어르신께 “혹시 영화 ‘군함도’라고 들어보셨습니까”하고 여쭈니 모르겠다 하신다. 할머니와 두 분이서만 사시며 TV도 잘 틀어놓지 않으니 요즘 일은 잘 모른다 하셨다.

하시마 탄광 관련 영화라고 설명해드리며 스마트폰으로 ‘군함도’ 예고편을 보여드리니 “그때는 군함도라는 말이 없었어. 그나저나 배우들이 고생했겠네”라고 하신다.

어르신 같은 강제징용피해자 분들의 이야기를 알려 그 고통과 피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겠냐고 하자 “그러면 고맙지”라며 웃으신다.

올해로 광복 72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여전히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민족이 겪은 피해는 완전한 치유도,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후손들은 그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그들을 위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전국 곳곳에서 위안부 소녀상이나 일제강제징용 노동자상이 건립되는 등 여러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데, 고성군에서도 일제강점기 피해자 및 유족을 지원하고 위로하는 방법을 찾아 자라나는 후손들이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