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현재 우리 사회는 의리와 도덕이 넘쳐흐른다. 학교 동문회, 향우회 등 수많은 종류의 친목단체, 정치단체, 이익단체 등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의리와 도덕으로 뭉쳐져 있다. 어떤 모임에서든지 의리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면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예기(禮記)에 나타나 있는 공자가 말한 대동사회(大同社會)가 우리사회에 도래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방방곡곡에 의리는 넘치는데 정작사회는 점점 믿음과 신용을 잃어가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 역시 사라져만 간다. 우리사회 내면에 속살과 화장(化粧)하지 않은 민낯을 보면 결코 아름답거나 살만하거나 바르다고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지켜야 할 의리를 지키지 않아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 사고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리를 철저하게 챙기면서 의무는 소홀히 한다. 지켜야할 규칙을 너무 쉽게 간과한다. 설마라는 편의주의가 만연해 있다. ‘귀차니즘’이라는 조어가 있다. 귀찮은 일을 몹시 싫어하는 태도나 사고방식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일도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간다. 자

녀의 교육은 성적지상주의에 몰입되어 있어 도덕이나 인성교육을 국가가 특정이념으로 주입하는 비민주적인 일이라고 악을 쓰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영어·수학만 잘하면 되지 뭔 교육이냐며 경시하거나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사회에는 자신만 아는 공주와 왕자가 넘쳐나고 남을 멸시하고 무시하며 괴롭히는 재미까지 즐기는 풍조가 생겨났다. 그래서 자신만 소중하고 남은 존중할 줄 모른다. 

인간존중은 우리사회의 정신문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사회는 갑과 을이라는 냉혹한 사회관계가 수없이 존재한다. 갑은 때로는 을에게 무한대의 횡포를 부린다. 사용자와 노동자, 상사와 부하, 대기업과 납품업체, 고객과 판매원, 교수와 학생, 사립학교 이사장과 교직원 등의 관계를 보면 전부는 아니지만 수많은 권력남용과 인격모독 억지와 횡포가 만연해 있다. 간혹 그 갑과 을의 관계를 역이용하는 사례도 있기는 하나 스스로 대한민국의 법에 호소하여 재판을 청구하였다가 재판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거나 같은 사안에 대한 같은 판결에도 자기편에 불리할 때는 불복선언을 하거나 심지어 악법(惡法)이니 깨부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식, 규칙, 원리원칙, 도덕윤리 사욕(私慾)과 방편(方便)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의리는 무엇인가?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을 보며 의리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한때 의리라는 말이 대유행을 하였다. 이는 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안위와 불이익을 따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이 말속에는 함께 나쁜 짓도 할 수 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옛 사람들의 의리(義理)는 친구의 곤경을 우정(友情)으로 도와주는 의리와는 다른 것이다. 

의리(義理)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의리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먼저 의(義)와 리(理)의 자의(字意)부터 살펴보자.

의(義)는 정의(正義) 혹은 도덕규범에 꼭 맞는다는 부합이라는 뜻이다. 논어(論語) 술이편에 보면 불의(不義)하면 부유하고 귀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나 내게는 뜬구름과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라고 하였다.

법은 귀족을 봐주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도 이유를 붙일 수 없다. 과오를 범함에 있어 대신(大臣)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