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형갑 고성미래신문 지면평가위원

아이들이 아닌 이상, 요즘 사람들에게 나이가 들어 보인다고하면 다들 별로 찜찜하게 생각한다. 사십대에게 ‘아가씨’라고 말해주면 매우 상냥해진다. 삼십대에게 호감을 얻는 방법은 ‘대학생 같다’고 말해 주는 것이란다. 이십대들도 ‘고등학생인 줄 알았다’고 말하면 온 얼굴이 환해진다. 겉모습이 어떤 것보다도 상위를 차지하는 이 시대에 나이가 든다는 것이나 들어 보인다는 것은 청춘의 소멸, 듬성듬성한 흰머리와 주름살, 늙음을 의미하며 쇠락의 표상이요 왠지 없어 보인다는 설움도 섞여있다. 

그래서일까 대통령도 얼굴 미용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할애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기의 여성 지도자들은 전부 단발머리에 나이는 박통보다 어려도 훨씬 늙어 보인다. 뭔가 부족할수록 겉모습으로 지대한 관심을 끌어보려는 정치적 용인술일까? 원래 근대 이전에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성숙한 연륜과 지혜로 연관시켰다. 시골 촌로들이 툭 던지는 한마디에 학자들이 놀라는 장면은 종종 목격되기 때문이다. 가방끈이 짧더라도 삶이란 충분히 나이든 사람에겐 지혜와 통찰력을 준다는 뜻이다. 야인의 삶이라는 이유로 정제되지 못한 거친 언어를 구사하는 필자에게 ‘나이를 먹으면 나잇값을 하라’는 친구도 이런 의미일 것이다.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을 지나 일흔 살쯤 되면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로 이어지는 공자의 어록은, 먹은 나이가 소화되어 삶의 지혜가 됨을 뜻하는 것이다. 살아온 나이만큼 많은 경륜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다보면, 자기와 다른 것을 싸안고 포용하는 품이 넉넉해지고 그런 만큼 그릇이 커질 거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남산에서 자주만나는 어른들의 ‘나이 들면 노욕이 무섭다, 뭐든 젊은 놈이 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도, 요즘 TV에 비치는 나이든 사람들의 희한한 행동을 보며 나이가 들면 지혜가 늘어난다는 말을 그다지 믿기 어렵다. 지혜가 늘어나기는커녕 반대로 나이만큼 편협해지고 독선적이 되며, 남 얘기는 무시하고 자기 고집만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경우를 훤칠하게 보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잘 보이지도 않고 잘 들리지도 않아서일까. 무언가 새로운 것, 내가 알지 못했던 것, 혹은 나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수용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것은 나이든 체질에는 불리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어른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마음의 여유는 신체적 여유가 없으면 수용하기 어렵다. 신체가 힘들 땐 작은 자극조차 짜증으로 내치게 된다. 무슨 평행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마음의 여유와 나란히 간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숙지한다. 신체의 유연성이 떨어지면 그와 나란히 마음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구조다. 운동을 일과에 포함시키는 필부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마음과 신체의 유연성이 오그라들고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것은 신체가 늙은 것에 따라 마음도 늙기 때문이다. 

그러나 늙은 것은 나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진행되는 생물학적 현상만이 아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연륜과 함께 나와 다른 것을 소화하는 능력이 확장되고, 마음과 신체의 여유가 늘어나 지혜롭게 성숙하며 존경받는 어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점잖게 연륜의 나이를 먹는 어른과 늙어간다는 말은 아주 다른듯하여, 마음의 유연성을 확장시켜 신체의 유연성이 줄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학자들의 논조를 새겨둘만하다. 

기계로 보자, 늙는 것은 입력장치의 고장, 출력만 작동하는 상태인 것이다. 새로운 것의 입력은 중단, 이미 입력된 것만 출력되니 새로운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입력된 자료를 가공(加工)하고 종합하는 사고(思考)장치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고 자신의 고집불통 사고로 비난만 받는다. 반면 나이가 들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입력하고 사고하려는 사람은 아직 늙었다고 할 수 없다. 단지 시시각각 변화의 국제시대에 대한민국을 주도하는 정치인 십중팔구가 지하철 공짜 대상이라 한국도 늙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서 뇌까리는 것이다. 

수개월간 수천만이 외쳤던 그 거대한 소리와 함께 켜든 촛불을, 태극기를 몸에 감고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저항하는 할아·할미들, 진실을 밝히고자하는 것을 부정하는 그들의 귀엔 입력되지 않는다. 헌재, 특검, 검찰, 국가의 법치체계를 통째로 유린하는 말을 뱉으며 그릇된 자기주장만 반복적으로 출력할 뿐이다. 무슨 사교를 믿는 듯 늙은이의 지독한 독선과 고집만으로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만 뽑아낸다. 거의 신적인 경지의 절대적 지존의 늙음이 우리 현실에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어버이들의 경지다. 

얼룩무늬에 태극기를 둘러싼 늙은 군인의 모습, 어떤 새로운 것이나 현실적 비판도 입력되지 않기에 이들은 어쩜 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입력장치(入力裝置) 사고장치(思考裝置)의 고장에서 기인하는 늙은이의 편협과 독선일 뿐이다. 입력되지 않기에 모든 것을 무시하는 독선은 좀 더 나은 세상을 갈구하는 희망으로 하여금 무력감을 느끼고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인데 이리도 길게 느껴지는 것은 이것 아닐까? 

정치와 늙음을 무기로 막무가내의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집회에 버스로 상경한다는 무슨 막강한 단체들, 입력장치는 고장 난 채 출력장치만 과잉 증폭되어 작동하는 것을 보면 내 인생조차 허무하게 느껴진다. 나이가 드는 것에 혐오스런 늙은이의 이미지를 두껍게 덧칠하는 것 같아서 슬프다. 이들을 보면 나이가 드는 것에 편안해지기 두렵다. 어떤 것도 입력 내지 받아들이지 않는다. 채워질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 극단의 늙음 뒤에 자리 잡고 있는 불통,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다. 편협한 독선의 끈에 칭칭 동여매인 채 요란하게 활개 치며 나이를 자랑삼는 추한 생존? 잘못 입력된 것 메모리에 있는 것만을 그대로 출력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늙음에서 오는 추락은 정말 무섭다. 무지한 노동자일지라도 정말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기득권과 싸우는 것인데, 어버이세대와 싸우는 것으로 비칠까 더 무섭다. 아,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