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연 스님

언덕 밑 배추밭에 고라니 한 마리가 들어가 맛있는 식사를 하는 중이다.
배추밭 주변에는 사람 키만큼 높은 그물망 울타리가 쳐졌는데 고라니는 대체 어디로 들어간 걸까. 그물망에 구멍을 뚫은 걸까 아니면 그물망 밑으로 기어들어간 걸까. 잠시 후 포식을 하던 고라니가 인기척을 감지하고 부동자세가 되었다.
동물에게도 미안한 감정, 즉 죄의식이 있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YES다. 인기척을 감지한 고라니는 먹기를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사람인지 아니면 동료 짐승인지 인지하는 중이다. 사람이라 판단한 고라니는 울타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울타리를 어떻게 통과할까 궁금했는데 녀석은 마치 높이뛰기 선수처럼 정확한 스텝을 계산하곤 아주 가볍게 그물망 울타리를 뛰어넘어 ‘달아나는’ 것이었다.
고라니가 ‘달아난다’는 것은 인간이 가꾸어놓은 농산물을 허락 없이 먹어서는 안 된다는, 고라니 내면의 미안함 즉 죄의식이 작동한 까닭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라니가 달아날 리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고라니가 죄인인가? 사람들이 멋대로 금을 긋고 자기 땅이라고 종이쪽지에 적어놓고 울타리를 치는 등 영역을 주장하지만 고라니야말로 원래부터 숲에 살았으니 ‘원주민’이 아니겠는가.
고라니 편에서 보면 인간은 어이없고 무례한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뒤쪽 대퇴골이 발달한 고라니는 달리기도 잘하지만 높이뛰기 선수였다.
고라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농부는 사람 키 높이 정도의 울타리는 뛰어넘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게 오산이다. 그러니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들짐승이 어디로 들어와 배추를 뜯어먹었는지 영문을 모를 일이 발생한 것이다.
울타리 밖에는 먹을 게 없으니 높이뛰기 선수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득 기독교회의 십일조가 떠오른다. 중세 유럽의 교회가 교구민에게 징수하던 이 제도가 다른 생명을 위한 나눔의 행위는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라면 울타리 바깥에 열에 하나쯤은 우리가 아닌 다른 생명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옳을 것이다.
‘먹이주기 행사’라는 미명으로 울긋불긋 각양각색 옷 입은 사람들이 관광버스 몇 대에 나눠 내려 철원평야를 누비며 새들이 기겁하게 만드는 일을 볼 때, 가을에 벼를 수확하면서 군데군데 일정 부분을 남겨두면 될 걸 왜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할까 하는 의문이 자주 든다.
반가운 손님이 오면 알려준다는 까치가 최근 해로운 조류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전봇대에 둥지를 틀어 정전을 유발하기도 하고 과수원에 들어가 잘 익은 과일만 쪼아대는 바람에 농부의 원성을 사는 것이다. 고라니처럼 과연 까치가 잘못한 걸까? 의문이 또 아니 들 수밖에 없다.
‘까치밥’의 의미는 나눔과 배려다.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나누는 배려다. 맛난 과일을 그물 속에 가려,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인간이란 인정이 있어야 인간답다. 인정이 없으면 금수나 다름이 없다. 눈곱만큼의 인정이 있다면 열에 하나는 나눌 일이다. 고라니를 나무라고 멧돼지를 나무라고 까치를 나무랄 일이 아닌 것이다.

도연스님 약력 : KBS〈VJ특공대〉〈무한지대 큐〉, SBS〈TV동물농장〉〈생방송 투데이〉〈물은 생명이다〉, MBC〈TV특종 놀라운 세상〉등에서 산새와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있으며, 저서로는 〈그래, 차는 마셨는가〉〈중이 여자하고 걸어가거나 말거나〉〈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