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자객열전에 나오는 예양(豫讓)이 한 말이다.
원문에는 ‘국사로서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예로써 대우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원문에는 국사로 나를 대우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국사로써 갚는다(國士遇我 我故國士報之)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국사의 예로서 대우하면 국사로 갚는다는 말로 변한 것이다.
기원전 춘추전국시대 이야기다. 예양이란 분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진(晋)나라 육경(六卿) 중의 한 사람인 범씨(范氏)와 중행씨(中行氏)를 지극한 정성으로 섬겼으나 날이 갈수록 확대가 심해지고 아무도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예양은 다시 지백(智伯)이란 높은 벼슬아치에게로 갔다. 지백은 예양을 스승처럼 친구처럼 극진히 대해 주었다. 그런데 그 뒤 지백은 조양자(趙襄子)와 싸워 패해 죽었는데 지백에게 원한이 깊은 조양자는 지백의 머리뼈에 옷칠을 하여 술 따르는 그릇으로 썼다. 혹자는 요강으로 썼다고 하는데 어찌되었건 좀 지나친 일이었다.
산중으로 피해 숨어살던 예양은 이와 같은 참담한 소식을 전해 듣고 분을 참지 못하여 이렇게 말했다. 소위 선비란 사람은 의리로써 나를 알아주는 사람과 죽음을 같이하고, 절개 높은 젊은 여자는 그 남편을 위해 죽는 법이다. 지백이 나를 의리로써 친절히 대해주었으니 기어코 그의 원수를 갚고 말리라. 하고 예양은 성명을 바꾸고 죄를 자청하여 죄인이 된 다음 조양자가 거처하는 궁중으로 들어가 변소의 벽을 바르면서 조양자가 화장실에 들어오기만 기다렸다.
그 이튿날 조양자가 화장실로 가는데 변소에 들어서자 갑자기 섬짓한 생각이 들었다. 예감이 이상했던 조양자는 부하에게 시켜 변소 안에서 일하는 죄수를 잡아 조사를 하게 했다.  몸에 비수를 품고 있던 예양은 하는 수 없이 신분을 밝히고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을 생각이었소.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조양자는 그의 의기에 감동되어 그 끔찍한 죄를 용서하고 보내 주었다. 예양은 다시 몸에 옻을 칠하고 수염과 눈썹을 밀어 없애버리고 문둥이로 가장한 다음 이집 저집 다니며 얻어먹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를 예양인 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를 알고 있는 아내가 달려나와 보고 “얼굴은 아닌데 어쩌면 목소리가 그렇게도 우리 그이를 닮았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양은 다시 불이 이글이글한 숯을 먹고 목소리까지 변하게 했다. 하루는 조양자의 행차가 지나간다는 이웃사람 말을 듣고 예양은 행차가 지나가는 다리 밑에 숨어 있었다. 조양자의 행차가 다리 앞에 와 닿았을 때 말이 놀라 소리를 지르며 다리를 지나가려 하지 않았다. 조양자는 필시 예양이 또 숨어 있을 것이다 하고 사람을 시켜 다리 밑을 살피게 했다. 잠시 후 끌려나오는 예양을 보고 조양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일찍이 범씨와 중행씨를 섬기지 않았던가? 지백이 그들을 다 죽였는데도 그대는 원수를 갚기는커녕 도리의 지백의 신하가 되었다. 지금 지백이 이미 죽고 없는데 그대가 유독 그를 위해 이토록 원수를 갚으려는 까닭은 무었인가?
신이 범씨와 중행씨를 섬겼을 때는 그들이 다 같이 나를 보통사람으로 대우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들을 보통사람으로 갚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지백은 나를 국사로써 대우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국사로서 갚으려 하는 것입니다.
슬프다 그대여. 그대가 지백을 위한 일은 이미 명분이 섰다. 그리고 나 조양자가 그대를 용서한 것도 그만하면 충분하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으니 그대가 알아서 하라.
예양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데 훌륭한 임금은 남의 좋은 일을 말리지 않는다 했습니다. 앞서 조양자 임금께서 신의 죄를 용서하신데 대해 온 천하가 다 조양자 임금님의 훌륭하심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일은 신이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그러자 조양자 임금이 무슨 청이냐 하고 물었다. 
임금님이 입고 있는 웃옷을 벗어 신으로 하여금 대신 그것으로 원수를 갚게 해 주시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조양자 임금은 그의 그 같은 심정을 크게 의롭게 생각한 나머지 서슴치 않고 웃옷을 벗어주었다. 예양은 칼을 뽑아들고 껑충 세 번을 뛰며 옷을 사람인양 세 번을 거듭 찔렀다. 그리고는 그 칼을 가슴에 대고 엎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죽는 날 조나라의 뜻 높은 선비들은 모두 그를 위해 눈물을 뿌렸다.
전국책(戰國策)이란 역사에는 예양이 찌른 옷을 핏자국이 뻘겋게 나 있었다고 기록돼 있어 후인들이 서로 감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