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영찬 경남JC특우회 부회장

 요즘 같은 날, 간밤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면 등굣길 대성초등학교 큰 은행나무 아래 노랑 은행이 고약한 냄새를 뿌리고 지천으로 떨어져 있다. 지금도 아주 큰 곳을 말할 때, “운동장만 하다”고 할 정도로 하염없이 넓었던 운동장. 그 넓고 붉은 운동장에 교장 선생님의 진두지휘 하에 전교생이 일제히 암송했던 ‘국민교육헌장’이 있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새겨,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중략)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중략)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옛 향수 같지만, 제법 긴 문장을 어린 나이에 외우느라 무진 애를 태웠던 기억이 새롭다. 권위적 교장과 온전히 외우지 못한 학생, 중간에 낀 담임선생의 곤란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일본 군국주의 이념과 비슷하다. 집단주의 냄새가 역겹다 하면서 김영삼 정부에서 근절하고 노무현 시절 싹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되새겨 보아 이처럼 훌륭한 문장은 어디에서도 쉬이 접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가 아니라 당대 최고 학자와 전문가 74명이 머리를 맞대 탄생한 명문이다. 그땐 몰랐으되 지금 생각해보니, 대한민국 정체성과 철학, 과학, 경제, 무엇보다 자유 민주주의 최고의 이념이라는 ‘개인’과 ‘재산’을 내세우는 ‘절대 이념’이라 생각된다. 물론 개인적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말이다.
 박정희가 구축한 경제성장의 틀을 와해시키고, 사변적 교육이념으로 국민을 혼란 속에 빠뜨린 것은 문민정부부터였으며 이로 인해 결국 IMF를 맞았고, 김대중은 혼란을 심화 고착화했다고 혹자는 말한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김영삼과 김대중은 나라가 망한다고 극구 반대했다.
 “부자들이 기생 태우고 놀러 다니는 꼴이나 보란 말이냐”며 국민을 선동하고 공사장에 드러눕기도 했다. 그 해 68년 12월 5일 박정희는 국민윤리와 정신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국민교육헌장’을 반포하고 2년 5개월 후 70년 7월 7일, 77명의 희생자를 딛고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은 거행됐다.
 목표는 이념을 낳고 이념은 신념으로 발전하여 국가대계가 이루어진다. 나라뿐만 아니라 작은 사회단체에서도 이념이 정립되지 않은 지도자가 나서면 혼란과 혼돈 급기야 퇴보로 나아가는 게 자명한 진리다.
 국민교육헌장 이념 위에 우뚝 선 경부고속도로는 대한민국의 척추요 동맥으로 지금도 쭉쭉 뻗어가고 있다. 그 후 줄줄이 빈약한 이념의 지도자들로 인해 민주화라는 미명 하에 족보도 없는 남미 ‘종속이론’이 판을 치고 대학생들의 혼란으로 국민에너지는 지리멸렬하게 됐다. 
 현재는 이정희, 이석기, 유시민, 심상정, 강기갑 등이 NL, PD계열로 명맥만 유지하지만, 당시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리영희 교수로 필두 하여 80년대 대학생으로서 레닌, 마르크스, 종속이론 이념들이 명품인 양 무게를 잡고 으쓱거리던 시절이, 지금은 부끄럽기 한량없으니 격세지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