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국가나 사회 전체에 미치는 대의명분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친분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의멸친이다. 춘추필법이란 말이 있다. 공자가 편찬했다는 춘추(春秋)란 책에 나오는 역사적 기록을 보면 그 글자 하나하나에 사회정의와 관련된 깊은 뜻과 사회생활의 넓은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해서 책이름을 춘추라고 했다.
이 대의멸친이란 문자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말이다. 노나라 은공(隱公) 4년 기원전 719년 위(衛)나라 공자 주우(州旴)가 임금 환공(桓公)을 죽이고 스스로 임금 자리에 올랐다. 환공과 주우는 이복형제 사이로 주우는 첩의 소생 이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성질이 거칠고 행동이 방자했는데 아버지 장공은 그를 사랑한 나머지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고 있었다.
석작(石碏)이란 대신이 앞일을 걱정하여 “주우공자를 태자로 세우실 생각이시면 일찍 결정을 내려 태자책봉식을 하십시오. 만약 이대로 두면 장차 큰 화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하고 여러번 간청하였으나 장공은 대답이 없었다. 석작이 여러번 간청한 까닭은 장공의 정비인 장강(莊姜)이 주우를 몹시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강부인은 얼굴도 미인이고 마음씨도 착했으나 아들을 낳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부인의 몸에서 난 아들을 자기 아들로 길러 뒤를 잇게 한 것이 환공이다.
그런데 석작의 아들 석후(石厚)는 재주와 용맹이 뛰어나 있었으나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 주우와 한통이 되어 어울려 다녔다. 석작이 염려한대로 주우는 석후와 비밀리에 치밀한 계획으로 임금 황공을 죽이고 임금 자리에 앉았다. 석작이란 대신은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자기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나 정치의 잘못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조정에 나아가 임금에게 그 잘못을 시정하도록 권유하고 넓은 아량으로서 민생고를 해결하도록 간청하였으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강했다.
황공과 이복 형제간인 주우는 임금 자리를 굳히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여 무력으로 이웃나라를 침공하는 등 여러 가지 교묘한 방법으로 무력을 써보았으나 나라 안 백성들은 여전히 주우를 따르지 않았다. 이를 타개할 방법에 어렵고 궁한 주우는 그 신하인 석후에게 말하기를 그대 아버지께 이 난제의 해결방법을 물어보라 하였다. 석후는 즉시 그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석작이 대답했다.
“순리에 의하여 먼저 천자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천자의 승인을 받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하니 아들 석후가 다시 말했다. “천자께서 받아들일 것 같지가 않습니다” 하니 “진(陳)나라 임금은 천자의 신임을 받고 있다. 지금 진나라는 우리나라와 사이가 좋으니 진나라를 통해서 가면 무난할 것이다”
이리하여 석후는 주우 임금과 함께 진나라로 떠났다. 한편 석작은 급히 사신을 진나라로 보내 이렇게 전했다. ‘우리나라는 힘이 없어 역적의 무리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으니 임금을 죽인 이 두 사람을 귀국해서 처형해 주시기 바랍니다.
석착의 부탁을 받은 진나라에서는 주우와 석후를 잡아 가두고 위나라로 처형에 입회할 사람을 보내 달라고 청했다. 이 때 석작은 혹시 자기 체면을 생각해서 자기 아들 석후를 살려 놓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자기심복 가신을 보내 직접 석후를 처형하도록 시켰다.
이상이 대의멸친과 관련된 사건의 줄거리인데 <좌전>에는 끝에 가서 군자(君子)의 말이라 하여 다음과 같은 평을 덧붙이고 있다.
석작은 충성된 신하다. 주우를 미워하여 내 자식인 석후까지 죽였다. 대의를 위해 육친의 정을 버린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石碏純臣也 惡州吁而厚與焉 大義滅親 其是之謂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