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영찬 경남JC특우회 부회장

 우리나라 5천만 인구 중에 대략 3천5백만의 인구가 한날한시에 대이동을 한다. 세계 몇 안 되는 진귀한 풍경이다. 설날과 추석 중 굳이 인구 이동면에서 민족 최대명절을 꼽으라면 설날보다 추석이다. 요즘 설은 양력과 음력설을 쇠는 사람으로 나뉘기에 이동이 상대적으로 편하다.
 추석 연휴 3, 4일 동안 3천5백만이 2번, 7천만 명이 도로 위에 한꺼번에 움직인다. 그럼에도 기네스북감은 못 된다. 중국은 춘제 연휴 일주일간 30억 명의 이동이 이루어진다. 닷새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1,000km를 달려 설을 쇠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중국인이 있는가 하면, 도로 위 차량 정체는 우리처럼 대여섯 시간이 아니라 몇 날 며칠씩 정체가 돼도 군소리 없이 고향으로 향한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조상과 부모 그리고 고향을 향한 마음은 뼈에 사무칠 만큼 강렬한 뭔가가 흐르고 있는 모양이다.
 음력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 한가위 4개월 뒤, 세뱃돈을 주거나 받을 설이 오고, 9개월 후에 때때옷 입을 추석이 온다. 4개월 만에 부모와 고향을 찾는 마음과 9개월 만에 찾는 마음의 온도 차이가 있기에 추석이 설보다 오히려 각별하지 않나 싶다.
 우리나라의 대이동은 이유가 있다. 조상을 찾아 성묘하고 긴 여름 농사에 고단한 부모님을 찾아 위로를 드리며 오랫동안 못 본 친지, 그리고 고향 친구를 찾아 회포를 나누는 짧은 일정이지만 햇과일과 음식들로 풍요로운 가을을 맞는 전형적인 농경사회 풍속 같은 의미 있는 대이동이다.
 반면 방어적인 사드를 붙잡고 몽니를 부리는 중국의 대이동은 덩샤오핑 시절만 해도 사회주의식 상호비판, 자아비판의 방편으로 이동이었다니 생경할 따름이다.
 해서 하는 말이지만 추석이 괴로운 사람들도 많다. 누구나 즐거워야 할 명절에 “취직은, 결혼은, 대학은, 사업은?” 등 자연스러운 위로임에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사회주의식 상호비판과 자아비판의 어두운 나락에 빠지게 한다.
 이번 추석에는 배려의 차원에서 이런 유의 질문도 마찬가지지만, 은근히 자기 자랑, 자식 자랑으로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일도 삼갔으면 한다. 즐겁고 행복해야 할 자리가 공회당에 집합시켜 빨간 완장에 고문 같은 비판의 장이 될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여느 때보다 길고 더웠던 여름, 배배 꼬이기만 하는 정치, 끝없는 경기 하락, 자살을 부추기거나 방조하는 사회, 뭐 하나 시원한 구석이 없지만, 희망의 끄나풀은 놓지 말아야 하는 민족정기가 우리에겐 있다. 추석을 쇠고 나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다.
 오고 가는 길이 다소 험난해도 예전처럼 12시간씩 길바닥에서 진 빼는 일도 없다. 사통팔달 고속도로, KTX, 비행기, 신장 된 국력 위에 즐거운 마음으로 창문을 열고, 길 위에 갇힌 이웃에게 너털웃음을 한 방 날려 보자. 웃음이 전염병처럼 번지는 도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즐거워야 할 명절에 소외되거나 아쉬움만 가득 찬 무의탁 노인, 각종 수용시설, 싱글족, 불우청소년, 불우이웃에게 온정과 배려의 손을 내미는 심성 맑은 뜻깊은 명절이 됐으면 한다.